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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Feb 03. 2024

<라일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소설적 질문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존엄을 지킨다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존엄함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밑바닥 삶을 전전하는 사람은 과연 이런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 듯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책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는 게 아니라 라일라가 하고 있다. 라일라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 목사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길거리 생활을 하던 라일라는 온갖 풍파를 겪으며 길리어드로 흘러들어오게 되었고, 사실상 의지할 곳도 없고 오갈 데도 없는 처지다. 그녀가 그동안 배워온 유일한 무기는 사람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 몫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동정을 받는 것이라서, 선량한 길리어드 목사와 동네 사람들이 무료로 내주는 선의를 그냥 받을 수가 없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무슨 일이라도 찾아서 해줘야 마음이 놓인다. 


   라일라를 보호해 주던 달과 돈 무리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더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애를 쓴다. 그들이 종종 느끼게 되는 수치스러움은 자기 존엄성을 느끼지 못할 때의 감정이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고유하고 고차원적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라일라가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런 감정들을 느끼기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의 경우와 같은 다른 밑바닥 인생들과 구별된다. 달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린 생명인 라일라를 구해내고 씻기고 먹이고 가르친다. 돈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사과를 팔아오도록 했을 때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라일라는 그런 가르침 덕분에 동정을 받지 않는다.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위계가 생기는 것이고, 그런 순간부터는 동등한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져서 이후에는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사람과 아래에서 그걸 받는 존재만 남는다. 아래서 받는 존재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종속된 관계가 얼마나 존엄성을 해치는지 생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대한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멀리 달아난다. 라일라는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 목사에게도 삶을 부정할 만한 상처가 없었다면 라일라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돌연한 죽음과 기나긴 외로움이 그를 단련하지 않았다면 라일라를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신의 말씀에 의지해서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면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라일라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존과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찾아보면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라일라의 회상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별히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장이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라일라와 목사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또한 극적이지는 않아도 그들의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점이 많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도 어느 사랑 못지않게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또한 특이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고, 누군가 구해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불안하고, 구원의 손길 같은 것 -먼 친척이 주고 간 유산이라든가 멋진 친부모의 등장이라든가 돈 많은 남자라든가 하는 것들- 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이 소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게다가 라일라는 예쁘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간다. 약삭빠르지도 않고 처세에 능숙하지도 않은 이 인물은 오히려 우리에게 본질에 가까운 것, 인간에게 더 소중한 가치에 대한 것을 계속 일깨워줘서 그런 모양이다. 마침내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라일라의 모습에 우리도 함께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라일라는 대체로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이런저런 것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다. 세상일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일어난다. 왜냐고 물어보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었다.”(473)


   사실 라일라가 질문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용감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질문은 그녀의 삶 자체를 구성해 온 질문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질문 끝에 도달한 저 대답은 마침내 그녀의 내부에서 일어나던 갈등이 가라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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