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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Feb 13. 202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누군가를 영원히 잃어버린 적이 있다면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단절과 전복을 경험한다. 영원한 단절이라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감각인지, 그 감각을 더듬어가는 시간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영원한’ 단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단절 앞에서 우리가 그동안 구축한 세계와 기억은 속절없이 무너지는데, 동시에 순간순간 지나쳐갔던 섬세한 부분들로 다시 세워지기도 한다. 


   놀랍게도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망자에 대한 기억을 다시 세워가면서 확인하게 된다. 망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남은 기억들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 후회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슬픔 속에서 쓰러져있다가 다시 일어나면서 말이다. 살아있는 자는 망자 앞에서 죄인처럼 느끼지만 결국 삶은 죄인을 해방시킨다. 마침내 기억의 일정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가 망각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는 시간의 축복 앞에서 슬픔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이런 모습들 알베르틴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마르셀이 보여준 모습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겪은 고통과 내면의 변화들을 섬세하게 기술해 두었는데,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보였던 모습과 다른 점이라면 알베르틴에 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다. 


   알베르틴이 떠났을 때 마르셀은 그녀를 되찾아올 수 있으리라 믿으며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을 생루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알고 난 후에는 그녀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고모라적 성향에 대한 의심이 사실인지, 알베르틴이 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죽음 앞에서 그녀의 실체가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은 죽음이 모든 죄를 덮어주기도 하는데. 


   마르셀에게 알베르틴의 성향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마르셀 앞에서 보여주지 않던 그 생생한 욕망이 알베르틴의 본질이며 사회적 모습을 벗은 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셀이 사랑했던 알베르틴은 마르셀이 보던 오류로부터 비롯된 모습이었으며 알베르틴의 사회적 가면 아래 있었던 모습이라서 마르셀은 진정한 알베르틴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알베르틴을 만나고 나면 자기 욕망의 실체와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우리의 기억이 언제나 진실하지 못하고, 또 삶이 지속적인 세포 쇄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일하고 싶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고, 삶을 바꾸고 싶고, 아니, 차라리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그 끈질긴 오래된 욕망은 내가 언제나 젊다는 환상을 주었다.”(300)


   사랑에 앞선 것은 욕망이라고 말하는 마르셀은 마침내 망각이라는 공간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 앞에 펼쳐진 아직 탐색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 속에는, 내가 지금 막 통과한 잃어버린 시간 속에 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흔적이 없었던 것처럼,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의 흔적도 더 이상 없을 터였다.”(301) 


   사랑이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마르셀을 둘러싼 계급적 질서가 바뀌고, 질베르트의 이름도 바뀌고, 생루의 성정체성도 바뀐다. 예상치 못했던 결혼들, 질베르트가 갖고 있던 마르셀에 대한 첫인상들도 믿음의 오류를 보여준다. 기존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고,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책에서 시간의 흔적은 좀 더 포악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가져다주는 변화 앞에서 마르셀이 느끼는 것은 오히려 고통에 무뎌지는 영혼이다.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471)


   ‘사라진 알베르틴’을 받아들이는 것, 그녀가 없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시간의 축복이며, 마찬가지로 변해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망각할 수 있는 우리의 영혼 덕분이라는 것이 마르셀의 깨달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깨달음에 깊이 동의한다. 




* 버릴 수 없었던 문장 몇 개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 실은 나의 온 삶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모르는 걸까.”(15)

   “인간에게서 가장 피하기 힘든 표절은(자신들의 잘못을 끈질기게 반복하면서 악화시키는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바로 자기 표절이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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