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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02. 2024

<빌라 아말리아>

내 삶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불안을 많이 느낀다. 그 이유가 안 이덴처럼 결핍에서 오는 것인지, 근원적인 공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마다 고통을 감각하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듯이 불안에 대한 감각도 다르다. 그런데 감각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불안은 더 고통스럽다. 


   나도 너처럼 안정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부러움과, 너는 나처럼 불안한 존재가 아닌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거리감이 고독을 더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와 타자의 차이는 고독한 존재를 낳고, 고독은 불안정한 존재를 흔든다. 


  안 이덴이 갑작스럽게 토마를 떠나게 되는 것은 외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부재 때문이다. “우리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욕조 안에 몸을 뻗고서, 침대에 누워서, 마비되었거나 부재하는 존재를, 우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지켜본다.”(122) 안 이덴이 깨달았던 순간에 토마는 이미 옆에 없었던 상태였고, 그걸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몸이 옆에 있다고 그 존재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일상의 관성 속에 있을 때는 진정으로 함께 한 삶이라기보다는 그저 살아가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라서 안 이덴은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잔인하고 이기적인 그녀의 아버지는 그걸 일찍 깨달았기 때문에 가족을 모두 버리고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존재의 충만함을 따르는 것과 도덕적인 면은 병립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면서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만난다. 빌라 아말리아와 레나와 줄리에트는 그녀가 자기로 존재한다고 느낄 때 만난 대상들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모든 사랑에는 매혹하는 무엇이 있다. 우리의 출생 한참 후에야 습득된 언어로 지시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무엇이 있다.”(156)

   그 사랑들은 영원하지 않다. 레나가 죽고 줄리에트가 떠나고, 빌라 아말리아는 의미를 잃는다.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사랑하게 된 조르주도 죽고 난 뒤에 혼자 남겨진 안 이덴은 “혼자라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기에 느껴지는 기쁨”(337)을 느낀다. 그렇지만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느껴지는 삶은 예전보다 아름답지도 않고 두렵기만 하다. 


   그런 안 이덴의 모습을 보는 우리는 그녀가 천재적인 음악가라는 것은 이미 잊고, 한 여인의 삶을 본다. 한때나마 충실했던 그 삶을 돌이켜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빌라 아말리아’는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키냐르의 단순하고 여백이 많은 문장들은 그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가라고 떠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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