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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Feb 26. 2024

<깊은숨>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

   주어진 삶이 당연하고 그 삶에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더 안온할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름의 이유를 치밀하게 파고들어 가지 않는다면 서로의 간극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 간극이 심연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심연 앞에서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소설의 인물들은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타인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말과 몸짓 하나에서도 의미를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의미 앞에서 종종 절망하게 된다. <오지 않은 미래>의 여경이 진수와 민서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이유도 그렇다. 진수와 민서의 호의가 여경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같이 있고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막막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들이 보내는 신호 앞에서 여경은 자주 헷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워서 어딘가로 탈출하더라도 근본적인 질문은 그대로 남아있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만히 바라보면>의 화자가 파타야에 가서도 무기력한 이유가 그렇다. 그런 화자가 잠에게 요가를 가르치면서 하는 말은 자신에게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잠이 린과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를 찾아서 말을 해주는 순간 화자도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사랑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도 설명하기 힘들다. 혈연관계에서도,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도 사랑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쪽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고 복잡하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의 인물들처럼 버림받은 이유를 찾는 것은 심연 속에서 불빛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모니카>에서의 화자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서 모니카를 그리워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변하는 마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삶과 이미 만들어진 관계 앞에서 선뜻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또한 의문이다. 인생이 한 가지로 말해질 수 없고, 해결책 또한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분명한 걸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비터스윗>의 진아와 린, 준과 제이슨의 미묘한 관계도가 보여주고 있다. <레드벨벳>의 화자와 헤럴드의 관계와 <코너스툴>의 화자와 호산씨도 관계도 그렇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조금씩 다른 것에서 오는 간극과 규정된 관계 안에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의문을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외로움과 절망들을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타인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 감각이 유별나서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각으로 인해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품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깊은숨”으로 다양한 감정들을 풀어내고 녹이면서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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