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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15. 2024

<오만과 편견>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적인 인물을 발견하는 재미

  이 책의 초고 제목은 “첫인상”이었다고 하는데, 그 제목으로도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대체로 처음 본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느낌을 발전시키면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이 갈등의 주축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만과 편견”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첫인상”은 중심인물들의 매력 포인트를 다 담기에는 조금 가벼운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서사의 기본틀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으면서 거슬리지 않았던 이유가 여주인공이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보통 신데렐라 스토리는 온순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수동적인 여자가 온 우주의 도움과 남자의 구원으로 신분 상승하는 이야기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성격부터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부터 엘리자베스는 “발랄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24)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인물 스스로의 입을 빌러 말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 책 말고 다른 즐거움도 많이 아는 사람, 재능이나 눈부신 미덕이 아닌 돈과 높은 지위의 위세 앞에서는 떨지 않는 사람, 허영심으로 인해서 선입견과 무지를 키우고 이성을 몰아내는 사람, 누군가를 비웃다 보면 이따금 재치 있는 말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으로 말이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베넷씨가 자신의 딸에 대해 평한 것은, 남편을 정말로 존경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돌하고 당차고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을 대입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인물 같아서 18세기의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소심하고 우물쭈물한 사람에게는 이런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이다 같은 인물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살피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성격도 아니다. 리디아가 결혼하고 본가로 찾아왔을 때 위컴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리디아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걸 보면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 묻고 싶은 게 많은 상황에서도 자주 참지만, 신분이 높은 캐서린 숙부인 앞에서는 모욕을 참지 않는다. 


   가치 기준이 명확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 입을 다물 줄 알고, 신분 질서가 공고한 사회에서 계급의 위계에 억눌리지 않는다는 특징들을 쏙 빼서 서술해 보면 엘리자베스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 않게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인 것 같다. 다아시를 보면서 섣부른 판단을 하고,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는 걸 보면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허영심을 엿볼 수 있는데, 그런 점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만의 대명사가 다아시인 줄 알고 있다가, 엘리자베스에게서 오만과 편견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백마 탄 기사 역할을 하는 다아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나타나도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태도만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생각하면 그가 연민과 명예를 위해 자존심이라는 약점을 극복해 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421)고 말한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사람은 언제나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인데, 엘리자베스는 자기 발전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발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라서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도 매력적이다. 


   한사상속이라든가, 리디아가 위컴과 사랑의 도피를 했을 때 베넷 가문이 멸망할 것처럼 인식하는 것, 결혼을 통한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 않으면 변변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 목사직 또한 부유한 가문의 후견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은 200년 전 영국의 풍속일 텐데, 그런 것들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런 풍속들이 지금의 눈으로 봤을 때 낯설고 신기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좀 더 나은 곳으로 인식할 수 있고, 이런 현재를 위해서 날카로운 눈으로 당대를 그려낸 소설가들에게 빚진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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