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에서 하는 행사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영맥데이"다. 매주 금요일 책방 영업이 저녁 7시에 끝나고 나면 7시 30분부터 영화를 보는데, 영화를 보러 온 손님들을 위해 맥주를 10% 할인해주는 행사를 한다. 원래는 목요일에 했었는데, 참여율이 들쑥날쑥하고 갈수록 저조해지는 것 같아서 주변의 조언을 받아서 금요일로 옮겼다.
그런데 금요일로 옮기고 나니, 오히려 오는 사람이 더 적어졌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불금을 보내는 방법 중에서 책방에서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3월부터는 매월 첫 주 금요일만 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면서 호응이 좋지 않으면 바로 바꾸거나 없애버렸는데, "영맥데이" 행사는 타산이 맞지 않아도 계속 이어온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책방을 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초콜릿 카페에서부터 인연이 닿았던 시나리오 작가님이 자주 놀러 왔다.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작가님과 그렇게 자주 얼굴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낸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서로의 직업에 대한 고충과 이런저런 사소한 일상과 싫어하는 음식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영화 파일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고, 그러면 그냥 우리끼리 보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보자고 하다가 영맥데이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영맥데이는 그 시나리오 작가님과 둘이 만든 초콜릿 책방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작가님은 능숙하게 영맥데이 포스터도 뚝딱 만들어주고 영화 파일을 가져오거나 다운로드하여서 틀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보답으로 초콜릿 음료를 대접했다. 때로는 작가님의 작업실에 내가 초대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런 기분 덕분에 서로의 우정이 좀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사이좋게 영화를 고르고, 영맥데이를 시작하기 전에 떡볶이를 사다 먹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겨울이 깊어질 무렵, 작가님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면서 칩거에 들어갔고 이후로 한동안 연락조차 힘들게 되면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책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러갔고 영맥데이가 아니라면 작가님을 떠올릴 기회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참여자가 한 명이든 혹은 아무도 오지 않든 쉽사리 영맥데이를 없애버릴 수가 없었다. 영맥데이를 지속시킨 이유는 작가님과 함께 만든 기획이라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겨울이 이제 지나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작가님이 다시 책방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제야 나는 작가님에게 영맥데이 행사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작가님은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고, 영맥데이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 별스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공동 기획자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제 영맥데이는 매월 첫 주 금요일만 진행한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다면 책방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진행하는 동안에는 좋은 영화를 함께 보기 위해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좋은 영화는 혼자 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함께 모여서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생각보다 큰 기쁨이 될 때가 있다. 그런 기회를 책방에서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도 책을 함께 보는 것과는 결이 다르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책방에서 장수하는 기획 하나쯤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한 시절을 함께 한 사람을 소중하게 떠올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