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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29. 2024

<맨스필드 파크>

소설의 제목은 다 커다란 의미가 있답니다.

   이 책도 다른 제인 오스틴의 소설처럼 역시 신데렐라 스토리가 기반이긴 한데, 신데렐라인 패니의 성격이 특별하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보통은 기존 관습과 다른 사고를 하는 인물이 신데렐라 주인공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패니는 오히려 기존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이성과 감성>의 매리엔이나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보인다. 


   함께 자란 사촌 언니들인 마리아와 줄리아가 관습에서 벗어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패니는 에드워드와 함께 전통적 가치의 소중함을 역설하는데 앞장선다. 준남작 신분인 토마스경이 교육을 잘 시킨 딸들보다 패니가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전통을 잘 이어받기를 원해서 교육을 시킨 딸들은 새로운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일탈을 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조카딸인 패니가 오히려 자신들의 가치를 더 잘 계승하고 있다. 


   이런 캐릭터가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러시워스의 저택에 방문해서 가족 예배실을 보고 감탄하면서 관습이 이어지기를 원하는 패니에게 그런 관습이 하녀와 하인들에게 미칠 영향을 말하고 있는 메리 크로포드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루 두 번씩 불쌍한 하녀와 하인들 모두에게 각자의 할 일과 소일거리를 놔두고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라고 강요했으니, 아마 이 집안의 윗사람들에게 참 큰 도움이 됐겠네요. 자기들은 다른 재미를 궁리해 내고, 예배에 참석도 하지 않았으면서요.”(141) 이렇게 매우 현실적이면서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메리 크로포드에게 자신의 가치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에드워드 또한 지금은 고리타분한 인물로 보인다. 


   그런 인물이었던 패니가 헨리 크로포드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반전처럼 느껴진다. 당시의 전통과 관습으로 봐서는 가난한 패니가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적절한 처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데 있어서 바위처럼 단단하고, 그런 원리원칙이 장점이 되도록 하는 데 너무 잘 어울리는 온순한 성품을 가진 여자”(561)인 패니가 “그 남자가 이 세상 온갖 완벽한 장점들을 갖고 있다 해도, 여자라면 누구나 그를 받아들일 거라고 정해놓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564)라고 말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 때문에 성격이 변했다고 한다면, 패니는 갑자기 입체적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패니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다분히 보수적이어서 외부적 요건으로부터 입체적 인물로 보인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패니가 품고 있는 사랑의 대상은 에드워드라기보다는 에드워드로 상징하는 맨스필드 파크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에 패니는 변화하지 않는 인물이다. 


   패니가 자신이 태어났던 포츠머스에 가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에드워드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맨스필드 파크에 대한 사랑에 가깝다. 항구에 면한 도시인 포츠머스의 복잡함과 가난하고 무례한 자신의 가족들의 생활보다는 맨스필드 파크에서 경험한 자연의 여유로움과 경제적 넉넉함에서 오는 우아함과 예절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제목을 "맨스필드 파크"로 정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전통적 가치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패니보다는 악역을 맡은 메리 크로포드와 노리스 부인이 더 매력적이다. 패니는 노리스 부인 덕분에 맨스필드 파크로 오게 되었지만 끊임없이 패니의 처지를 상기시켜 주는 부인 때문에 괴로움에 처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임에도 주변 사람의 처지를 끊임없이 살피는 이런 인물 덕분에 소설의 재미가 올라가고 내용도 풍부해진다. 메리 크로포드의 현실적 관점과 주변 사람들에게 날리는 날카로운 지적들은 현대의 여성처럼 보일 정도다. 


   더불어 소설이 상당히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연극을 활용한 소설적 장치와 제인 오스틴의 노련한 문장들 덕분이다.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공연하기로 한 연극 덕분이며, 자세히 묘사한 연극 무대와 의상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의 주택과 조경, 인테리어 등을 상세하게 작품 속에 녹여놓은 덕분에 독자는 그 시대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것들이 여전히 제인 오스틴을 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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