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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01. 2024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우울해질 때마다 한 편씩 읽기

   짧은 이야기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이상 기억 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순식간에 읽어치우는 만큼 그 작품에 들인 시간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지간해서는 마음에 남을만한 문장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재밌거나 특별하거나 아주 특이한 사건 하나씩만 담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기에도 숨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카렐 차페크가 쓴 이 소설집에 들어있는 짧은 이야기들이 모두 다 기억에 남지는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몇 가지만 기억에 남아도 성공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기 때문에 성공적인 소설집이 맞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재밌게 읽히는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도 든다. 


   경찰이 주된 등장인물이며, 범인을 잡는 일이 주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주제는 “모든 것이 우연”혹은 “미스터리”라는 것이 놀라운 반전이다. 스릴러의 형식은 작가가 설정한 꽉 짜인 구성안에서 머리싸움을 하다가 마침내 범인을 알아내는 쾌감을 얻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카렐 차페크의 이야기들은 대놓고 미스터리는 정말 미스터리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발자국>, <메이즈리크 형사의 어느 사건>, <야니크 사건> 등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그렇다. 과학의 힘이나 법적 규율로 인간을 꿰뚫어 보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정작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언제나 미스터리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법과 규정을 위반하며 삽니다. 경찰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걸 늘 보게 됩니다…나는 설사 사람들이 자연의 법칙을 어긴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인간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이거든요.”(18)


   인간이란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한 가지 잣대로도 볼 수 없는 존재라서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스터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납득이 된다. 그런 작가의 태도 덕분에 이야기들은 의미가 더 풍부해진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어서인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읽힌다. 


   <푸른 국화>에서 클라라만 푸른 국화를 발견할 수 있는 비밀은 그녀가 가진 결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반전, <점쟁이>에서 비과학적인 카드점이 보여준 놀라운 우연의 일치, <신통력의 소유자>와 <필적 미스터리>에서 드러내는 인간의 허영심과 맹신 등은 <셀빈 사건>에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에서 연쇄살인범 쿠글러가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신은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는 법이네.”(235)라고. 심지어 범죄자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은 자신이 쿠글러의 죄를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농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확대되어서, 본드라체크가 밭 때문에 장인을 죽인 사건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조차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 친구도 자네나 나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네.…자네가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법률이나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244) 


   법률이나 정의가 항상 최선의 판단이 아니라는 점은 <살인 미수>와 <어느 배우의 실종>에서 드러난다. <살인 미수>에서 톰사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자신이 오히려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어느 배우의 실종>의 골드베르크는 자신이 아끼던 배우 벤다를 죽인 범인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지 않는다. 그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법의 심판보다 더 정의로운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처럼 “아무도 모르게 심판”을 내린다. 


   신조차도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가 인간이 자신들의 법으로 서로를 심판하는 일에 맹목적으로 손을 들어줄 리가 없다. 법과 규율로 심판하는 것이 최선의 단죄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이 단죄해 주길 바라다가 그것조차 어려울 때는 신의 몫으로 돌린다. 하지만 작가는 신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기보다는 인간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단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짧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작가의 그런 마음에 어느새 동화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에서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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