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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01. 2024

<전쟁과 평화 1>

19세기 초 러시아 귀족들이 보았던 전쟁의 모습

   알렉산드르 1세를 위한 열병식 장면을 읽으면서 개인이 전체의 일부였을 뿐이었던 세계를 보았다. 인간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자는 아마도 황제였을 것이고, 대표자였던 만큼 나머지 전체의 충성과 흠모를 받았을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어쩌면 신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고 있었을 그런 위치가 존재하던 세계가 있었고, 그런 존재를 섬기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았던 개인들이 있었던 세계를 지금 우리는 읽고 있다. 그런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모습과 가치는 현재의 우리가 가진 의미와 가치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서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제시할 대의명분이 애국심이나 황제에 대한 충성심 말고 다른 것이 되리라는 걸 1부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전쟁은 볼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 모두 깨지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톨스토이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가 무의미한 것이 되려면 세상이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소식을 듣고 있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이 시대의 기술을 통해서 목도하고 있으니, <전쟁과 평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아직도 유효하고, 그가 찾고자 했고 말하고자 했던 “전쟁과 평과”의 의미를 우리도 함께 찾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다르게 될 결론이 다를지라도, 어쩌면 아주 약간의 차이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작가가 이미 안드레이의 입을 통해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때 황제에 대한 열광으로 무아의 감정까지 경험한 로스토프조차 전쟁의 부조리함을 목격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우리를 어떤 길로 인도해 갈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겪었던 전쟁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이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오히려 더 안 좋은 쪽으로 더 가까이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게다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까지도-이상기후라든가, 양극화된 자본주의- 겪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 이야기를 읽다 보니, 블라디미르 마카닌이 쓴 <아산>이 떠올랐다. 아우스터리츠 전쟁이 배경인 <전쟁과 평화>와는 달리 체첸전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100년 사이에 전쟁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질린 소령의 행동을 통해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개인주의적인 면모와 안드레이와 로스토프를 비롯한 귀족들이 보여주는 영웅주의의 대비를 보다 보면 전쟁의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애국심이나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대의명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우리는 귀족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쟁을 보는 중이고, 그 시선이 어디까지 가닿는지 좀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제목으로만 짐작해 봐도, 그저 전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문장들


- 피예르가 가까이 가자 백작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는데, 그저 눈이 있으니 어딘가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지도 모르고, 혹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164)

- 일상생활에서 계급적 차별을 엄수하고, 심지어 도청의 고관들마저 좀처럼 식당에 들이지 않는 공작이, 한구석에 앉아 격자무늬 손수건으로 코를 푸는 건축기사 미하일 이바노비치를 들여 돌연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딸에게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결코 나나 너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고 타일렀던 것이다.(196)

-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고개를 돌려 뭔가를 찾는 것처럼 먼 경치며 도나우 강물이며 하늘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푸르고 고요하고 깊은가! 저물어가는 태양은 얼마나 밝고 장엄한가! 저멀리 도나우 강물은 얼마나 부드럽고 반짝이며 빛나는가! … 저곳은 고요하고 행복에 가득차 있다…… ‘내가 저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로스토크는 생각했다.(290)

- 안드레이 공작에게 이 소식은 비통한 동시에 기쁜 것이었다. 러시아군이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자마자 그의 머리에는 이런 상념이 떠올랐다. 러시아군을 그런 상태에서 구출하는 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 아닐까?(316) 

-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하지만…… 천국 같은 건 없고, 그저 대기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거든.(344)

- 대체 뭐 때문에? 나를 죽이러? 그토록 모두에게서 사랑 받고 있는 나를? … 젊고 행복한 자신의 인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뚜렷한 공포감이 온 존재를 사로잡았던 것이다.(365) : 프랑스국과 마주쳤을 때 로스토프가 느꼈던 감정, 다치고 나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낌.

- 바실리 공작의 아름다운 딸 옐렌은 부자가 된 피예르와 결혼하기로 함, 피예르는 옐렌과 결혼하면 불행해질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있지만 거부하지 못함 : 이 결혼에는 뭔가 역겹고 자연에 반하는 것,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401)

- 모두들 예사롭지 않고 뜻깊고 장엄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장군이든 병사든 이 인간의 바다 속에서는 모래알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미미함을 느꼈으나, 그러면서도 이 거대한 전체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위력을 느꼈다.(473)

- 로스토프는 황제가 처음 다가간 쿠투조프군의 앞렬에 서 있었는데, 그 순간 전군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낀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이 순간의 위력을 의식하는 자랑스러움과 이 장엄함의 원천인 사람에 대한 열광적이 애착이라는 무아의 감정이었다.(474)

- 그는 이 사람이 자기가 동경하던 영웅인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순간은 나폴레옹도 흘러가는 구름이 떠가는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기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작고 하찮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560)

- 안드레이 공작은 나폴레옹의 눈을 보면서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563)

- ‘모든 것이 마리야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명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면서 어디서 구원을 찾고, 삶이 끝나면 저기, 무덤 속에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지금 기도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안심될까……’(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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