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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y 04. 2024

<진>

누보로망의 재미를 발견하고 싶다면

   우리는 소설을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장르라고 믿는다. 그리고 소설이 보여주는 드라마가 삶의 모습을 비슷하거나 아주 흡사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전통적 소설이 보여주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나 기승전결의 구조, 인과관계가 분명한 사건들이 실제 우리의 삶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삶은 그렇게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경우도 드물고, 우리가 삶에서 발견하는 의미도 주어진 사건의 결과라기보다는 시간이 뒤죽박죽 엉키게 마련인 기억과 생각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존의 소설이 우리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거나 우리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는 믿음조차 기존의 관념에 대한 맹목적인 계승일 수도 있다. 아마도 알랭 로브그리예는 기본의 소설적 관습과 꽉 짜인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답답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예술가의 정신은 언제나 관습과 기존 관념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면을 보는 것인데, 이 작가는 소설의 내용을 세상에 대한 은유로 만들기보다는 형식을 그렇게 만들기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시몽 르쾨르는 화자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동시에 인물에 대한 묘사 또한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주요 인물인 시몽조차도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진다. 시몽이 미션을 받는 진이라는 인물도 그렇고, 장과 마리라는 아이들도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인물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교차하거나 서로의 캐릭터가 덧입혀지면서 각 인물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처럼 다각화된 인물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가장 실재하는 모습에 가깝지만 소설 안에서는 가장 허구적인 인물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하나의 선으로 그려지지 않고 각 장마다 조금씩 확장되는데, 확장과 동시에 미묘하게 달라지면서 데자뷔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게 된다. 게다가 마지막 장인 8장은 끝과 처음이 이어지는 동시에, 이야기 전체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보통 우리가 소설에서 보는 이야기의 구조와 다르게 순환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히 아는 오이디푸스 신화도 이곳에서는 변질되고 다른 의미로 전환한다. 어찌 보면 누군가의 꿈을 기술해 놓은 것 같은, 가장 비논리적 구조로 이어지면서 마치 신화와 꿈이 머릿속에서 엉켜 있다가 나온 것 같은 소설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구조에서 벗어난 만큼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이 소설을 읽어낼 수 있다. 더 확장된 상상력으로 좀 더 새로운 것을 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낯선 느낌이 우리의 사고를 장악해서 읽기가 힘들겠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우리의 세계를 넓혀 나가다 보면 무의식의 세계처럼 무한한 공간을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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