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을 못하는 이유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아마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요한 하리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변화의 속도가 당황스러울 정도인데,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하고 대체로 자신들의 탓으로 돌린 채 살아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남을 탓하기도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실 요한 하리가 전하고자 하는 주장들 중 아주 새로운 것은 없다. 어딘가에서 전해 들었거나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서 잔소리를 들으면서(주로 음식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작가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근거를 가지고 논증하는 것은 다가오는 무게가 다르다. 대립되는 입장들을 보여주는 것도 우리가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한 번 더 문제점들을 깊이 생각해 보고 명확히 인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이 소수의 자본을 늘리는 일에 복무하기 위해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볼 때와 이 책을 읽고 나서 볼 때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AI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나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민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법만 가르치는 교육에 대한 우려도 그렇다.
“이제 내게는 한 가지가 매우 분명해 보였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계속 심각한 수면 부족과 과로 상태에 있다면, 3분마다 작업을 전환한다면, 우리의 약점을 파악하고 조종해 우리가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게 하는 소셜미디어 웹사이트에 추적되고 감시된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각성 상태가 된다면, 에너지의 급상승과 급강하를 일으키는 식단을 먹는다면, 뇌에 염증을 일으키는 독소로 가득한 화학물질 수프를 매일 들이마신다면, 당연히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집중력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419)”
작가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명확한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빠지려고 하는 “정치적 비관주의”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다. 초거대자본에 맞서기에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싸움을 시작하려면 일단 핸드폰부터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더더욱 힘겹게 느껴지긴 하지만, 분명히 방법을 찾아야 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 시작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의미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들
-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51)
-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죠.(52)
- 정복해야 할 존재는 자기 안에 있는 것뿐이에요… 글쓰는 행위가 시의 이유에요. 등반도 마찬가지죠. 내가 흐름 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흐르는 것의 목표는 계속 흐르는 거예요. 정상이나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 머무는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는 거예요.(85)
- 찰스는 소비자본주의적 가치의 지배를 받는 사회에서 “수면은 커다란 문제”라고 말했다. “잠든 사람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아요. 아무 상품도 생산하지 않고요.”(118)
-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디지털 방해는 “자기 생각에서 주의를 멀어지게 하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억압”한다.(151)
-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이 있다면, 그게 바로 권력이에요.(169)
- 정치인이나 기업이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으면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가를 지불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히 겨냥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172)
- 그가 발명한 기능의 결과로, 총 20만 명이 넘는 인간의 삶(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매일 화면을 스크롤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시간들은 무한 스크롤이 없었다면 다른 활동에 쓰였을 것이었다.(185)
- 페이스북은 우리가 화면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시간만큼 돈을 벌며, 우리가 화면을 내려놓을 때마다 돈을 잃는다.(194)
- 트리스탄은 현재 우리가 “인류의 집단적 퇴화와 기계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218)
- 잔혹한 낙관주의는 이 작고 얄팍한 해결책이 실해할 때 개인이 시스템을 탓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235)
- 그러나 왜 우리가 이 시스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를 “낚고”“미치게”만들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 가득한 환경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가?(236)
- 페이스북의 성장이 사회에 너무나 유해할 수 있기에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일한 출구는 “반성장” 전략을 채택하는 것, 즉 의도적으로 규모를 줄이고 돈은 덜 벌지만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는 기업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257)
- 나는 현재 우리의 학교 제도가 너무 편협해서 수많은 아이들(특히 남자아이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