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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29. 2024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외로운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

   변변찮은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하숙집을 전전하는 마흔 넘은 노처녀. 외모든 능력이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 결혼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교양 있는 숙녀라서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 사람. 그녀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신이지만 답을 해달라고 아무리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도 뾰족한 해결책 하나 주지 않는 신부님.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디스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순전히 남아도는 자기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가지고 자기 망상 속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보면 시간이 그럭저럭 흘러간다. 


   “그녀는 비스킷과 치즈, 사과를 먹은 뒤 안경을 찾아 쓰고 도서관에서 빌린 캐나다 소설가 바조 드 라 로슈의 책을 펼쳤다. 그러고는 난롯불에 맨발가락을 쬐며 안락의자에 몸을 기댄 채 기나긴 밤을 죄수처럼 기다렸다.”(62)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서 남겨진 시간 속에 갇힌 죄수처럼 느껴지는 주디스. 살면서 한 번도 삶의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이, 이모를 병간호하다가 청춘을 날려버린 이 여자에게 오닐 부인은 질투의 대상이고 공무원이 된 에디는 선망의 대상이다.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그나마 친구라고 해서 찾아갈 수 있는 그 두 명조차 주디스의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막막하고 길게만 느껴지는 남겨진 그 시간을 말이다. 


   공무원이 되어서 자기 능력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던 에디도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걸 보면서 주디스는 아마 자기의 미래가 더 암담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오닐 부인, 모이라처럼 결혼을 하고 싶다. 결혼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든 씨는 주디스의 망상 속에서 키워왔던 이상적 인물이 아니라 미국에서 실패해서 돌아온 인물일 뿐이다. 게다가 주디스와의 결혼을 원하지도 않는다. 주디스에게 다른 대안은 신의 도움인데, 신은 도통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신을 찾을 수밖에. 현실을 잊고 즐겁게 노래를 할 수 있는 다른 신, 주(酒)님. 


   주디스가 매든에게 거절당하고 하숙집에서도 쫓겨난 후 남은 돈을 모두 긁어모아서 플라자 호텔로 간 것은 갈 곳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없으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호텔에서 나온 주디스가 오닐 부인의 집에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성당으로 향한 것은, 그녀를 평생 억압해 온 대상이거나 그녀가 평생 의지해온 대상인 절대자에게 해결을 구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그녀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마음은 술에 대한 것과도 일치하고, 자기 삶에 대한 것과도 상통한다. 그녀를 최초이자 최후로 해방해 주고 에피파니로 이끈 유일한 대상이다. 


   그녀의 이런 이중적인 마음은 끝까지 변함이 없는데, 주디스를 보호해 준 모이라에게 마음속으로 그녀가 자신을 동정해서 우정을 잃은 것이라며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고맙다고 말한다. 


   삶의 파국 앞에서, 그녀가 끝까지 사랑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이모와 성상이라니. 그녀의 망상이 성공한 셈이다. 정신 승리라고 해야 할까. 그녀에 대해 설명해 주는 다른 책의 문장을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기독교 전통에서 욕망에 대한 규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교회법이 부과한 규제와 역사적으로 매우 빈번히 나타났던 신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한 규제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유혹, 즉 불법적인 충동과 욕망(혼외정사, 폭식, 시기,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 등)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우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신의 도움에 의존합니다.”(『욕명의 철학-내 삶을 다시 채우다』,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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