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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31. 2024

<미들 마치 1,2>

위대한 여성 작가를 만나는 기쁨

   제법 많은 곳에서 이 소설이 언급된 것을 보긴 했지만 꽤나 묵직한 분량 때문에 선뜻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한동안 미들마치라는 곳에 살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는 대체로 젊은 남녀가 재산과 지위의 정도를 재면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멀찍이 서서 청춘 드라마를 관망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조지 엘리엇의 이 소설은 결혼 전부터 이후까지의 삶이 다양하게 얽혀 있고, 인물들도 입체적으로 엮여 있어서 생생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주요 인물은 도러시아와 케소본, 윌 래디슬로 부부와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부부, 프레드 빈시와 메리 가스 부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도 비중이 적지 않다. 특히 뒤로 갈수록 서브펜스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 불스트로드의 과거 이야기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인물과 엮인 리드게이트와 래디슬로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이 소설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미들마치라는 사회를 통해 영국 사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는 지식과 통찰력의 깊이가 상당히 깊고 폭넓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남성 작가가 보여주던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이 소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소설의 도입부부터 여성 작가로서의 야심 찬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실은 오래전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은 이동과 혼합이 옛 영국에서도 진행되었다. 그 역사가도 과거의 역사를 풀어 갈 때 한 여자의 운명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1권-166)


   평생 제대로 된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쓸모없는 학문에 매진했던 케소본과 의학 분야에서의 성취를 꿈꾸던 리드게이트와 게으르고 변변치 못한 인물이었다가 페어브라더 목사와 메리 가스의 가족들의 도움으로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 프레드 빈시와 같은 남성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지만, 도러시아와 로저먼드, 메리 가스와 같은 여성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정말 현실적이라서 마치 지금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래 메리 가스의 대사와 같은 것들은 대사의 톤만 조금 바꾸면 지금 젊은 여성들이 하는 말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여자들이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게 여기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고 사람들이 늘 상상하는 것은 젊은 아가씨의 인생에서 가장 불쾌한 일 가운데 하나일 거야.”(1권-233)


  게다가 도러시아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꿈을 꾸고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행동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남자들의 태도를 이런 식으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어떤 위대한 면모를 볼 때 그녀를 아주 잘 사랑할 수 없다고 느끼며 부끄러워하는 일이 거의 없다.”(1권-646)


   뿐만 아니라, 계급적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사고방식의 한계 또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쉽게 예단하고 가치판단을 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자기 한계를 드러내는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리드게이트는 옷에 무관심하다고 믿었고, 의상의 효과를 따져 보는 사람을 경멸했다. 그가 새 옷을 풍족하게 소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런 물건은 당연히 몇 묶음씩 주문했다. 그가 지금까지는 끈질긴 빚 독촉에 시달린 경험이 없었음을 기억해야 한다.”(2권-266)


   성별의 차이로 인한 차별과 사회적, 경제적, 신분적 차이로 인한 차별 또한 인물들을 통해서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 소설은, 인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만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소설가들의 소설가라는 평을 가히 들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서 어떤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 위대한 작가는 우리에게 대단히 현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의 점진적 개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위 덕분이기도 하고, 당신이나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충실히 무명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2권-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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