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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19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물건을 살 때 종종 실수하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사게 될 때다. 제일 쉬운 실수가 옷일 텐데, 한 가지 옷을 두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격식 있는 자리에도 캐주얼한 장소에서도 다 잘 어울린다는 말에 혹 해서 사게 되지만 결국 아무 데도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가장 경제적인 쪽으로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가장 비효율적인 물건을 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에는 곁눈질도 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역시 그때뿐이다. 후회하고 또 반복한다.


그래도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핵심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역시 이상일뿐.

나는 그런 결정을 그리 잘하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너무 욕심이 많거나.


한창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은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다 만나고 싶으니 한 번에 약속을 잡아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를 매개로 그 자리에 함께 있게 된 두 사람에게 그 자리가 불편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도 다 좋은 것은 아닐 텐데, 나는 그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좋은 사람이니 함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건 명백한 내 욕심이었다.


이런 실수는 물론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도 사람인데, 이쪽저쪽에서 두 배로 욕을 먹다 보면 그래도 배우는 게 생기게 된다. 역시 사람은 타인을 통해 배우는 게 제일 확실하다. (이렇게 쓰고, 욕을 먹으며 배우는 게 제일 효과가 좋다고 읽는다.) 그렇게 배우고 나서도 여전히 비슷한 실수는 저지른다.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는다.


초콜릿 책방의 위치를 현재 이곳으로 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월세이기도 했지만, 한 가지 더 크게 작용한 다른 요소가 있었다. 바로 아이들이었다. 집과 아이들 학교와의 거리가 현재 이 위치로 결정하는데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게 작용했다. 아마 아이가 없었다면 조금 더 엉뚱한 곳을 노려보았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도 충분히 엉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방을 이곳으로 정하면서, 아이들이 오며 가며 책방에 들르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도 하고, 아이도 볼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이런 일은 그런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이다. 나에게는 역시 다용도 물건의 나쁜 추억을 떠올리게 될 뿐이다.


아이들이 책방에 오면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게 되리라고 기대한 것은 이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던 내가 여전히 변하지 않은 탓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행동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책방에 들어와서도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이곳은 엄마의 일터라서,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의를 주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부터 딱 3분까지만 말의 효과가 작용한다. 3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카오스다. 아이가 하교하고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책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아주 나중에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카오스로 변질된 책방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를 질책하며 애써 마음을 다스릴 뿐이다. 책방은 책방이어야 하지, 놀이터도 될 수 있고 육아방이 될 수도 있는 다용도 공간이 아닌 것이다.


어딘가에 정말 나무랄 데 없는 다용도 물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뿐.

그리고 어딘가에 일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슈퍼맘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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