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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20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책방을 연 지 근 일 년이 다 되어가니, 나도 문학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문학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문학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긍정도 부정도 포함하고 있지 않겠지만 일정한 이미지는 존재하는 것 같다. 내게는 이 표현이, 좀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타인과 세상을 읽어내는 과정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어쩌면 다만 읽어내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는 순간과 과정 모두가 포함되기도 할 것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내가 아닌 대상을 읽어내려면 스스로를 조금 더 몰아붙여야 할 때가 많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 한 마디나 별 뜻 없이 한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때로는 하루가 다 가고 나서 잠자리에 들어서나, 다음날 아침에 샤워를 하는 도중에 문득 내가 저질렀던 잘못이나 실수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종종 스스로도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아서 때로는 불쑥 올라오는 생각을 모른 척할 때도 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묻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묻어두려 한다고 해서 잊히는 것이 아니니, 결국은 다시 곱씹어보고 부끄러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가장 심하게 겪었던 때가 문학에 뜻이 있다는 사람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밥을 먹고 술을 마셨을 때였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었을 때였을 테니까,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할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나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확인할 때면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할 때가 많았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날이 서 있거나 과잉되어 있던 감정들은 아이를 낳고 나자, 아이라는 블랙홀로 모두 빠져들어가 버렸다. 아이는 그 전의 세계를 전복시키는 압도적인 존재여서, 그 전의 감정들까지 조금씩 마모시켜 주었다. 게다가 아이는 나와 타인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을 나를 중심에 놓고 바라보게 되던, 사춘기 소녀가 드디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이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몸짓과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가능하게 되었다. 반면에 예민하고 섬세하던 감정은, 그것을 읽어내던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디어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고,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핑곗거리도 충분했으니 더 이상 피곤하게 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했다.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초콜릿 카페도 그런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해 집중하다 보니, 다른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무시하기도 했다.


초콜릿 카페를 그만두고, 초콜릿 책방을 열고 나니 무덤덤해졌던 그때의 그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다. 책방은 카페보다 확실히 사람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카페에서는 판매하는 물건의 효용과 가치 혹은 이미지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누어서 부담이 덜했는데, 책방은 판매하는 물건의 내용과 깊이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때도 좀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카페도 단순히 돈을 받고 물건을 판매하는 일만은 아니었지만, 책방에 비한다면 비즈니스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깝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살필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문학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들은 대체로 괜찮은 사람들이 많고 대체로 문학적이므로, 책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얻거나 좋은 자극을 받곤 한다.


대체로 지난한 과정을 통하면 괜찮은 결과가 나온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이렇게 힘든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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