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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28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올봄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에세이를 냈고, 누구라도 구매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구에게라도 뒤질세라 재빨리 읽었다. 책 소개를 제대로 하려면 내가 먼저 읽어두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빨리 읽었던 만큼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면서 판매를 했다.(사실 김영하 작가의 책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소위 핫하다는 작가들의 소설이 연이어서 나왔다. 그사이 다른 출판사들도 좋은 작가들의 책을 부지런히 선보였다. 그리고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런저런 다양한 신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그 사이에 몇몇 소규모 출판사들이 읽어보라고 신간 샘플 책들을 두고 갔다.


도대체 하루에 몇 권의 새로운 책이 출판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하루에도 무수한 신간 소식을 접하는데, 국제표준 도서번호(ISBN)가 찍힌 책부터 개인이 소량 제작하는 독립출판물까지 사뭇 다양하다. 매일같이 신간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아직 연차가 많이 쌓이지 않은 어리숙한 책방지기에게는 신간으로 채워진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많은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이 잊히게 될까 싶어서 말이다. 그중 어떤 책을 건져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다.


분명히 모든 책방에는 큐레이션 기준이 있다. 그저 책방지기의 기분에 따라서 서가를 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방지기의 고유한 성정이 작용할 테니 기분이 오락가락하더라도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대체로 일정할 것이다. 일정한 기준이 있다는 것은 그 기준에 부합하는 책을 잘 골라낼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수많은 신간의 홍수 속에서 재빨리 가려내기가 쉽지는 않다. 가끔씩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책을 들여놓고 나서 후회할 때도 있다.


때로는 출판된 책을 판매하기 전에 모두 읽어보고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 있게 책을 권하고 판매하려면 적어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책의 개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책방을 내기 전에는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줄 알았다. 보통 책방지기들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기만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책방지기들이 흔히 하는 여러 가지 잡무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빨리 책만 읽어도 하루에 두 권 이상 읽기가 어렵고, 그마저도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힘들어진다. 필사적으로 들여온 신간을 모두 읽어도, 다음날이면 또 다른 신간이 대기하고 있다. 서가의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고 해도, 대부분의 책은 읽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서가를 볼 때마다 조바심과 죄책감이 든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독서의 즐거움을 잊게 된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행간을 조용히 읽어가면서 읽던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순식간에 읽어버려도 되는 책도 있지만, 공들여서 한참 동안 읽어야 하는 책도 있다. 그런데 읽는 행위가 일이 되어 버리면 더 이상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닥치는 대로 똑같이 읽어치우게 된다. 제대로 마음에 남지 않는데, 머리로만 읽을 때가 많다.


과연 책을 판다는 의미는 뭘까.

자꾸만 책방지기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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