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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29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정기적으로 하는 책방 행사는 이상하게도 빨리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일주일 단위로 진행하는 행사도 그렇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행사도 마찬가지다. 토요장터도 끝났구나 싶으면 벌써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토요장터가 끝나면 셀러로 참여하는 연경의손맛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왜 이렇게 시시하죠?

별 게 없으니까 그렇죠, 술이나 마시죠.


그러다 문득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평소의 책방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토요장터에도 참여자가 좀처럼 늘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뿐 아니라 신박한 물건을 판매하는 셀러도 늘어나지 않아서 장터라고는 했지만 장터와 같은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한 번도 셀러를 찾아 나서거나 공지를 한 적이 없으니 새로 참여하는 셀러가 없는 게 당연했지만 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장터 말고도 고민할 거리는 산더미 같았지만, 일단 이번에는 장터부터 고민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벼락치기처럼 하는 습관이 있어서 일단 묻어두고 있다가 시일이 닥치면 본격적으로 고민이 시작되는데, 토요장터에 관한 고민도 항상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해야만 하는 것이라서, 개선의 시기를 매번 놓치곤 했다. 그러다가 토요장터 날이 되면 그동안 고민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이면 그래도 어찌 되었든 마무리가 되었다는 생각에 셀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고민은 또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한 달이 지나 토요장터가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이다. 이번이야말로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고민을 많이 한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신중하지 못하다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민을 많이 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단 고민은 조금 하고 일단 떠오르는 대로 해보는 게 낫다는 주의다. 그래서 일단 또 생각나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장터에 참여하는 셀러들의 강연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셀러들에게 가능 여부를 물어보았다. (물어보았다,라고 썼지만 강요하고 압력을 넣었다, 로 읽어내는 것이 바르게 읽은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진 첫 번째 토요장터 클래스는 한국 와인 소비자 협동조합(줄여서 한와소)의 팀장님께서 진행해주신 <인생 화이트 와인 찾기>였다. 한와소 팀장님은 훈훈한 외모 덕에 보고만 있어도 와인 맛이 달달해지는데, 수업도 전문가답게 매끈하게 잘 진행해주셨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나 또한 즐길 수 있다면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자체 평점을 주곤 하는데 이번 행사는 평점이 매우 높았다.


더불어 참가자 중 한 분이 해주신 말씀이 평점을 후하게 주는데 한몫을 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초콜릿 책방은 '넓고 얕은 지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방인 것 같다고, 취미 활동으로 하는 일이라면 넓고 얕은 지식으로 즐기고 싶을 뿐인데 초콜릿 책방에서 하는 행사가 그에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책방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오긴 했지만 막상 누군가 이렇게 담백하게 이야기해준 것은 처음이라서 감동적이었다. 그동안 초콜릿 책방은 정체정이란 것이 없는 책방이 아닐까, 항상 내가 내키는 대로 일단 던져보고 해 보느라 아무런 색깔도 없는 마구잡이 책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애정을 담아 책방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주는 것을 듣고 보니 정말 고맙고 기뻤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면에서도 전문가가 아니고, 관심사도 잡다하고, 덕후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책방이 이런 정체성을 갖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욕심 같아선 좀 더 확고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책방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치밀하지도 혹은 확실하지도 않은 책방지기가 꾸는 꿈 치고는 너무 원대하고 막연한 꿈이었던 것 같다는 깨달음이 문득 들었다. 내가 되고 싶은 것과 나 자신은 다를 때가 더 많은 법인데, 나는 항상 저 먼 곳에 있는 별만 따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방은 매번 내게 현실을 제대로 보게 하는 매개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책방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까지 깨닫게 된 책방지기는 다시금 아무렇게나 막 살아보는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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