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원래 여름은 카페의 성수기다. 무덥고 습한 여름을 나기에 카페처럼 좋은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쾌적하게 유지되는 실내에,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가 있으니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북적이고 아이스 음료를 연신 만들다 보면 더운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그러므로 카페의 여름은 정신없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런데 책방은 여름이 어떤 계절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여름을 두 번 밖에 나지 않았고, 그나마 첫여름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정신없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짐작하기로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여름은 독서 전의 계절이 아닐까 할 뿐이다. 독서 전의 계절에 책방은 그저 책들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장소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초콜릿 책방은 카페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의 계절뿐 아니라 독서 전의 계절에도 사람이 많이 찾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었다. 여름은 카페의 성수기니까 말이다. 여름을 지나고 나니, 역시나 조심스럽게 예상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자신만만하게 예상했으면 약간의 심리적인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이런저런 행사들로 채워서 여름을 지나 보냈다.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슬슬 한 해의 결산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부쩍 우울해졌다. 어쩌면 마음만 바쁜 여름을 지나와서 우울함이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역시 지속되는 고민은 책방의 정체성이다. 본격적인 책방도, 제대로 된 카페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걸 보면 아직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탓이 제일 큰 것 같다. 누군가 지나가는 길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여기는 뭐하는 곳이에요? 하고 물어보면 조금은 주저하면서,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하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것이 온전한 내 대답인지 아직 확신이 없다.
아마 이번 여름을 카페로서 성공적으로 지나왔다고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분명히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핫 초콜릿을 한 잔 팔고 나면 책을 한 권 팔고 싶고, 책을 한 권 팔고 나면 핫 초콜릿을 한 잔 팔고 싶어지는 게 초콜릿 책방지기의 마음이다.
한 계절이 더 지나고 나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책방지기에게는 매 순간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초콜릿 책방은 조금씩 더 확고한 정체성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