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11월이면 날씨는 아직 가을이지만, 겨울이 문밖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책방에서 두 번째로 맞는 겨울이다. 책방지기가 항상 앉아 있는 곳에서 보는 바깥의 경치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계절의 변화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멀리 철로변 담벼락을 따라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색깔이 변해가는 것도 그렇고, 책방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터에서 자라고 있는 등나무와 은행나무가 무성함과 앙상함 사이를 오고 가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책방 뒤쪽에 자리한 경로당에 오시는 할머니들이 기르고 계신 부추와 깻잎이 자라고 있는 텃밭이다.
텃밭이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할머니들이 허리를 구부리지 않도록 높게 벽돌을 쌓아서 허리춤까지 오게 만들어 놓은 구조물 위로 흙이 있다. 언뜻 보면 축대처럼 보이는데, 정사각형 구조물 위에 흙이 있고 그곳에서 부추와 깻잎이 자라고 있다. 봄이면 연한 잎들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면 힘차게 자라서 경로당 할머니들이 몇 번을 베어 먹어도 금세 비슷한 모양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10월에는 꽃대가 올라오고, 이맘때쯤이면 하얀 부추꽃이 핀다. 함께 자라고 있는 깨는 이제 알맹이들이 영글어가고 있다. 겨울이 오면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얼어붙은 흙 위로 눈이 쌓인다. 무심히 쌓인 눈을 보면 계절이 한 바퀴 돌아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경로당 할머니들은 텃밭을 애지중지하신다. 그래 봐야 부추 한 단 정도 수확할 수 있고, 깨는 한 주먹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지나며 한 번씩 들여다보고 가물 때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와서 주신다. 누군가 양심 없는 사람이 놓고 간 쓰레기는 보이는 대로 치워서 텃밭 주변은 항상 말끔하다.
처음 책방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철거작업을 할 때 건물주가 그 구조물도 같이 헐어버리려고 했는데, 할머니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때는 할머니들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게는 작고 볼품없는 조그만 축대 위에 놓은 흙더미일 뿐이었다. 그런데 책방에서 일 년 반 동안 텃밭을 바라보다 보니, 여린 듯 싱그럽고 힘차게 자라는 부추와 그것을 쓱 잘라서 반찬을 만들어 드시는 할머니들에 대한 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경로당 옆을 지날 때면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고스톱을 치시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볼 수 있다. 서로 사이좋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하지만, 싸우고 토라지고 화를 낼 때도 종종 있다. 싸워도 다음 날은 또 전날과 똑같이 둘러앉아서 함께 밥을 드신다. 나른한 오후에는 나란히 누워서 낮잠을 청하기도 하고, 막걸리 한 두병을 나눠 드시기도 한다. 어쩐지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텃밭은 계절이 푸르고 싱그럽게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책방지기에게도 익숙해진 저 풍경은 가끔 난폭해지려는 마음을 부드럽게 다스리게 되는 장면이 되었다. 미풍에 부드럽게 흔들리든 강풍에 바닥에 엎드리게 되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그 자리에서 무심하고 푸릇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