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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들>

경계를 허물고 상상력을 회복하게 하는 선물 같은 단편집

by 초콜릿책방지기

단편집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묶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집으로 묶으려면 어떤 기준이나 주제가 분명히 작용할 것 같다. 기획된 소설집이 아니더라도, 한 작가가 쓴 이야기들은 그것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인생의 화두가 작품들 하나하나에 어느 정도는 반영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매우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이 어떤 주제로 묶여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었다.


‘기묘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이야기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를 두고 기묘함을 띄고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묘함도 있고, 설화나 민담으로부터 온 기묘함도 들어있으며, 시간의 흐름 안에서 느껴지는 기묘함도 있고, 종교적 정치적 기묘함뿐 아니라 다가올 세계의 기묘함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에서 기묘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묘함과 평범함의 차이는 있는가, 그 차이를 가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기묘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른다. 그렇게 기묘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면서 작가는 우리가 설정한 어떤 경계와 차이에 대한 기준을 허물고 새롭고 낯선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도록 만든다.


어린 시절 악몽 속의 인물이 알고 보니 자기 자신이었다는 이야기인 <승객>도 그렇고, 전쟁의 희생자 혹은 피해자들이 오히려 자연에 더 잘 적응해서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만들어낸 <녹색의 아이들>도 그렇고, 때가 되면 어미 품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살다가 어머니의 병조림을 먹고 죽은 아들의 이야기인 <병조림>도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지만 숨겨진 기묘함이 있고, 그 안에 새로운 관점이 있다. 나이 들어서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과거를 한순간에 도려내야 하는 당혹감을 양말의 솔기에서 발견한 B씨의 이야기, <솔기>도 마찬가지다. 그가 치매에 걸렸든지 혹은 세상이 치매에 걸려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며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 세계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일정한 목적에 따라서 만들어진 존재들인 에곤들이 가족을 이루며 사는 이야기인 <방문>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의 삶을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하거나 단정하는 것이 매우 이르고 섣부른 일이다. <실화>의 등장인물인 교수의 상황은 현실적인 당혹감을 안겨주는데, 그가 겪을 일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리해주고 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다음이란 없고, 결과에 앞서 원인이 선행되지 않으며, 모든 게 놀라운 정지 상태에서 지속되는 이상한 공간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103)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심장 기증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는 M씨의 이야기인 <심장>은 윤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자기 삶의 모든 의미가 떠나간 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늑대가 되기로 한 여인의 이야기인 <트란스푸기움>은 현재 삶에서 탈주하는 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탈주가 앞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모든 성인의 산>은 한 수녀원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성인이라고 불리던 존재들을 복제해서 재탄생시켰을 때, 종교의 경계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유일무이한 정신이야말로 고귀했던 그 시대의 가치는 이미 사라졌으며, 그들을 무한으로 복제할 수 있다면 성인이라는 의미 또한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축일력>에 등장하는 모노디코스는 인간이 오랫동안 가지고 왔던 희생양의 거대한 함의를 갖고 있는 존재다. 권력의 크기 여부를 떠나서 희생양은 언제나 필요했는데, 그 상징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는 무엇이 그 의미를 대신할지는 상상에 맡길 일이다.


혼종과 탈주, 경계 허물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대적 향기를 가장 진하게 맡을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 같은 단편집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하고도 기묘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였지만, 그런 능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어른들을 위한 선물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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