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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시칠리아 귀족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엿보는 이탈리아 역사

by 초콜릿책방지기

작가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시칠리아 남단에 근거지를 둔 귀족 집안 출신이다. 소설은 작가의 증조부를 모델로 해서 썼다고 하니 자전적인 가문 이야기인 셈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쓴 유일한 책이라고 하는데, 스러져가는 가문의 산증인으로서 자신들의 역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기록으로 남기려는 목적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의 주인공은 살리나 가문의 영주 돈 파브리초이며 당시 시칠리아가 면한 역사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그의 반응과 생각이 이야기의 주된 골자이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인 격변의 시대에 기존의 계급 질서 또한 급속도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변화의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계급은 귀족 계급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없던 것이 새로 주어지는 것보다는 있던 것을 빼앗기는 것에 훨씬 더 민감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변방에 있는 귀족 가문일수록 변화에 더디게 반응하고 기존 관습을 고수하려고 할 텐데, 작가가 그리고 있는 영주는 조금 남다른 인물이다. 과학에 매료된 인물이라서인지 피할 수 없는 변화라고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성격을 가진 조카 탄크레디를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원래는 ‘양치기 소녀’였던 안젤리카를 조카며느리로 받아들인다. 떠오르는 세력인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칼로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두 계급이 서로 섞이는 장면의 백미는 6장의 무도회 장면인데, 이 대목에서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연상된다. 프랑스적인 섬세함과 허영심, 문화적 풍성함과 퇴폐성은 좀 부족하지만, 귀족과 귀족이 아닌 계급을 가르는 스타일, 예의, 말투 같은 것들이 지난 시대의 문화를 고수하려는 인물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탄크레디와 안젤리카가 팔라초 구석구석을 누비며 탐색하고 사랑하는 장면은 귀족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집의 은밀한 공간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정서와 비밀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당시를 살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귀족 계급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그 공간을 속속들이 보여주면서 베일에 싸인 것 같았던 그들만의 특권들을 조금을 알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영주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제안하러 온 슈발레가 방문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시칠리아인의 입을 통해 말해주는 시칠리아를 들을 수 있다, 여섯 달 동안 40도에 가까운 열기에 시달리며 가뭄에 지쳐있다가 갑작스러운 폭우의 공격에 휩쓸려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연적인 면에서도 지쳐있기도 하지만, 예술이나 지적인 면에서 한 세기 늦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수 세기 동안 식민지인으로 살아온 시칠리아 인들이 원하는 건 오직 잠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들이 가진 정서가 어떤 것일지 짐작하게 한다.


“시칠리아에서는 잘하거나 못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시칠리아인이 절대 용서하지 않는 죄는 그저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시칠리아 사람들은 늙었어요, 슈발레, 너무 늙었어요. 외부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어 들어온 눈부시고 이질적인 문명을 우리 어깨에 짊어지고 산 지가 2500년은 되었어요. 우리에게서 싹트지 않았고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문명을 말입니다. 우리는 슈발레 당신처럼, 영국 여왕처럼 백인입니다. 하지만 2500년 전부터 우리는 식민지에 살았어요. 불평하는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잘못은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쳤고 공허합니다.”(225)


소설은 돈 파브리초가 죽고, 그의 딸들이 지키고 있는 팔라초라는 공간을 조명하면서 끝이 나는데, 나이 든 딸들이 사 모았거나 지키고 있던 보물들은 이제 무가치한 것들이라고 평가되고,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가차 없이 버려진다. 이제 그 시대는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그들끼리 존재함으로써만 의미를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살롱을 가득 메운 모든 사람들, 이 추한 여자들, 이 어리석은 남자들, 이 자만하는 두 남녀의 혈관에는 모두 같은 피가 흘렀고, 그들은 돈 파브리초 자신이었다. 그들을 통해서만 그는 자신이 이해되었고 그들을 통해서만 편안했다.”(286)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작가를 통해서 좀 더 의미를 확장해서 살아남게 되었다. 그들끼리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기록으로 남아서 역사적, 문화적, 인간적 의미를 담게 되었다. 한 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표범 같던 그 사람들, 그 시대를 풍미하던 그 모든 고급문화들을 지금의 시선으로 보고 있으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집착하던 기준들이 시간의 폭력 앞에서는 매우 무력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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