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잘 만든 현대판 근대사 소설
소설의 제목인 “작은 땅”은 당연히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땅은 작지만 땅의 모양이 호랑이의 형상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리고 그 작은 땅에 실제로 호랑이가 살기도 했다. 비옥한 평야보다는 거친 산이 더 많은 척박한 곳이라서인지, 그 땅 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어느 정도 “야수”를 닮아있었을 것이다. 제목부터 그토록 분명하게 한국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소설이다.
소설은 호랑이 사냥꾼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한겨울 산속에서 굶주린 채 사냥을 하는 한 남자를 그리고 있는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와 같은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게 한반도 저 북쪽 추운 땅 평양 근처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가면서 기생 은실, 단이가 키워내는 옥희, 월향, 연화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시에 호랑이 사냥꾼의 아들인 정호의 이야기도 나란히 등장한다.
주요 인물인 옥희와 정호가 평양에서 경성으로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고, 두 인물이 성장하면서 엮이는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정말 잘 짜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구성 모두 전형적이면서 빈틈없이 잘 짜여 있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사의 서사가, 현대성을 덧입혀서 리메이크한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이 바로 이 책이 대중성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옥희는 잘 나가는 기생에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고, 정호는 다리 밑에서 살던 거지 무리의 왕초에서 독립운동가가 되는 이야기에 한철의 등장으로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도 더해진다. 3·1 운동을 비롯한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그 안에 잘 엮어 들어가는데, 그러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인 성수와 명보도 그렇지만 야마다와 이토라는 일본인 캐릭터들도 양면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다. 인물들은 모두 기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어디선가 본 듯했거나 실존 인물의 일면을 가지고 있어서 낯설지 않다.
근대사의 질곡을 살아내고 난 옥희가 제주로 가서 해녀가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철수를 맡아서 기르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클리셰다. 한반도 저 북쪽 끝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남쪽 끝에서 끝나고, 호랑이 사냥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해녀로 끝난다. 해녀는 바다에서 제가 먹을 만큼만 음식을 얻고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을 품는다.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일본의 지배와 민족 분단의 전쟁을 겪고 나서도 살아나 마지막에 남은 “야수”는 작고 보드라운 생명을 품는 여성성이라는 점은 현대성을 잘 덧입힌 결과다.
소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형적인 인물들을 가지고 익숙한 방식으로 하고 말해주고 있는데, 소설 속 그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읽기에 조금은 통속적이고 식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이 가진 힘과 미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야를 넓혀 바깥의 시선으로 우리를 본다는 것 자체가 낯섦과 확장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