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힘
지속적으로 책을 읽다 보면, 읽었던 책들의 이야기가 미묘하게 섞여서 떠오르기도 하고 장면들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거나 인물들의 인상이 희미해져 있곤 한다. 그래서 개성이 강한 인물이라든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사나 독특한 구조, 혹은 강렬한 장면에 대한 묘사 중 한두 가지만이라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책이 좀 더 큰 의미를 갖게 되곤 한다.
그중 어떤 책은 그 속의 문장 한 줄에 매혹된 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아주 적확하게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대해 문장 한 줄로 말해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책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장 한 줄에 멈춰서 교감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작가와 독자가 진심으로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부가 제목으로 사용된 그 문장 하나로 양자오라는 작가와 제대로 만나게 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만약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삶에 시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시는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를 오가며 존재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경험도 모두 그렇게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 낀, 아스라하지만 그렇기에 영혼 속 깊숙이 심어진 것이 아닐까?”(23)
대체로 시를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은 시가 말하고 있는 의미의 이중성과 모호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시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가 없는데, 여러 번 곱씹으면서 읽어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했을 때는 그냥 던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릴케의 시는 언제나 그런 쪽에 속해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막연히 시인의 이름에만 터무니없는 친밀감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양자오는 릴케에 대해 말하면서, 시가 가진 특징이 바로 그 모호함이기 때문에 그런 특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난 후 릴케의 시를 읽기를 권한다. 양자오 자신도 몇 번을 거듭해서 읽다 보니 릴케가 의도한 바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완전한 이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어슴푸레하게라도 알아차리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용기를 심어준 셈이다. 그런 뒤에는 릴케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물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좀 더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어서 양자오의 설명에 의지해서, 릴케의 시는 인간과 신의 관계처럼, 인간의 오만함을 없애려 아래로 끌어내리는 방향과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위로 끌어올리는 방향의 끝없는 길항작용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루 살로메와 파울라라는 당대의 매력적인 여인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 릴케의 시를 읽는다면 양자오의 시각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재미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이 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일까. 결국 이 책도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이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