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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검은 피부 아래서 숨 쉬는 따뜻한 영혼을 만나는 시간

by 초콜릿책방지기

프랑스인이면서 프랑스인일 수 없었던 프란츠 파농은 자신이 갇혀 있던 인종주의의 한계를 무의식까지 파고들어 과감하게 깨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앙티유 지식인으로서 전도유망하고 자신만만한 미래를 꿈꾸던 파농이 프랑스군에 입대했을 때 느꼈던 그 모든 것, 즉 자신이 속한 곳, 혹은 인종적 계급적 지위가 ‘프랑스 식민지의 흑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충격과 고통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스스로를 대면하는 과정이기도 했을 텐데, 그런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픈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때로는 날카로운 언어로 말하고 있음에도,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듯 자신의 비판을 당대성에 한정하고자 했던 것은 핍진한 자기 응시를 통해 나온 겸허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짓는 건축물은 지금이라는 시간성 안에 놓여 있다. 모든 인간 문제는 시간을 기준으로 고찰되기를 요구하며, 이상적인 것은 언제나 현재가 미래의 건설에 쓸모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는 우주의 것이 아니며 참으로 나의 세기, 나의 나라, 나의 실존의 미래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나 다음에 올 세계를 준비해야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나의 시대에 속해 있다.”(13)


본문에서 파농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언어의 문제,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 정신병리학적으로 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언어에 달라붙어 있는 콤플렉스의 문제는 도시어와 지방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프랑스어와 크레올어와의 관계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고 지적한다. 흑인의 언어는 역사성을 갖지 못하고 백인들이 만든 일정한 프레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고유어로서가 아닌 카피한 언어로서의 한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카피한 언어라는 것은 위계 속에서 언제나 아래쪽에 자리하게 된다.


이어서 분석하는 것은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관계에 설정된 무의식적 환상과 신경증의 문제다. 유색인 여성이 백인 남성을 욕망하는 문제는 자신의 피부색에서 벗어나 흰색을 갈망하는 문제이며, 유색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백인의 인정을 전제하거나 흑인의 성적 본능에 대한 금기를 넘어서야 하는 문제이다.


정신병리학적 측면에서 논할 때 흑인이 무의식적으로 야기하는 공포증에 대해 다루면서, 생물학적 상징으로 여겨지는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말한다. 이러한 인종적 편견은 유대인에 대한 것과는 다르게 외적 현실에 의해 좌우된다. “유대인은 발각되고 나서야 푸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매사가 처음 보는 모습이다. 어떤 기회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외부에서부터 중층결정되었다. 나는 타인들이 나에 대해 가진 ‘관념’의 노예가 아니라 내 외관의 노예이다.”(115) 사실 집단무의식의 어두운 면은 “특정 집단의 편견, 신화, 집합적 태도의 총체”인데, 그런 측면이 인종주의에서 비롯한 인류의 수많은 비극을 탄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만약 비판이 비판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당대에만 유효한 목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농은 자신을 비롯한 흑인이 과거의 노예이긴 하지만, 그것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아주 분명한 태도로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유색인인 나는 단 한 가지를 원할 뿐이다: 결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기를. 인간이 인간을, 말하자면 자아가 타자를 노예화하는 일을 그만두기를. 인간이 어디에 있든, 내가 그 인간을 찾고 원하도록 허락되기를. 검둥이는 없다. 백인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소통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 각자의 선조들이 남긴 비인간적 목소리에서 멀어져야 한다.”(227)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과 자기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파농은 이렇게 마치 노래하듯 우리에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한계뿐 아니라 당대 지식인의 한계에서 벗어나, 좀 더 크고 먼 곳까지, 인류라는 한 덩어리로 인간을 바라보고자 했던 노력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렇게 우리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날 갈피를 못 잡고, 가차 없이 나를 가두는 타자, 백인과 떨어질 수가 없던 나는 나를 대상으로 만들면서 내 존재로부터 멀리, 참으로 멀리 떨어졌다. 그것이 내게 살갗 벗겨내기, 근원 잘라내기, 내 온몸의 검은 피를 쏟아내는 출혈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이 재검토, 이 주체화를 원치 않았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 사이의 한 사람이기만 원했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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