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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 강의 다리>

발칸 반도의 역사 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어떤 도시를 떠올릴 때 그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먼저 생각날 때가 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라든가 이집트의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은 그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상징물들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떠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 “다리”로 설정된 것은 정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4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성이 강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부동의 어떤 존재가 꼭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다리는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라는 곳을 흐르는 드리나 강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를 변덕스러운 뱃사공의 비위를 맞춰가며 건너야 했던 강을 이 지역 출신인 베지르가 밀어붙여서 다리를 건설한 덕분에 수월하게 건너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리는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유린과 지배자들의 폭력은 다리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남아있게 된다.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쌍둥이를 산 채로 다리에 묻었다든가, 근처를 지나가는 남자들은 무조건 잡아다가 일을 시켰다든가, 터키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엄청나게 탄압했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다리가 완성되고 난 뒤에는 옛 설화처럼 이야기 속에 묻혀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완성된 다리는 마을의 중심이 되어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위대하고 아름답고 유용한 건축물의 기원과 생명은 그것이 세워진 장소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듯이 그 안에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역사를 종종 안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이 다리 사이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오는 긴밀한 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어찌나 서로 얽혀 있던지 따로 생각할 수도 분리해서 말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23)


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 마을은 각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다리를 통해 교류를 하면서도 서로의 믿음과 생각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투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이 다리는 대홍수가 나든 지배 세력이 바뀌든 상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꿋꿋이 버티고 있으면서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태인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자연의 힘과 공통적인 불행의 짐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데 뭉치게 했으며 적어도 이날 하룻밤 동안은 종교와 종교를 갈라놓은, 특히 터키인들로부터 라야를 갈라놓은 틈에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110)


이곳 주민들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체로 무관심하며, 현세에 충실하다. 지배 세력이 바뀌어 누군가 억울하게 죽는 일과 같은 일이 생기면 몸을 숙이고 조용히 엎드려 있는다. 바깥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더라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만 해석해서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카사바 주민들은 불길한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싫어하고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의 피에는 참된 인생이 조용한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는 더 확고하고 더 영속되는 다른 인생을 모색하다가 그 시간을 망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며 쓸데없는 것이라는 믿음이 흐르고 있었다.”(144)


철도가 놓이고 나서 다리가 더 이상 예전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고 이곳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 무감하다. 사실 세상이 격변하고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한순간에 그렇게 빨리 변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삶은 여느 곳에서의 것과 마찬가지로 무심하고 느리게 흘러갈 뿐이다. 마치 다리가 주변 모든 것에 무심한 듯 우뚝 서있는 것처럼 말이다.

“카사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이방인들이 이미 여러 해에 걸쳐 그들의 마을 주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듯이 다른 모든 일들 뿐만 아니라 다리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무관심했다.”(312)


소설은 세계대전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기 전에 끝이 난다. 이보 안드리치가 쓴 보스니아 3부작 중 1부라고 하니, 그 뒤의 이야기는 나머지 작품에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아주 특별한 이 마을, 무슬림인 터키인과 정교도인 세르비아인, 가톨릭 시잔인 크로아티아인, 유대교인들까지 모두가 섞여서 살고 있던 이곳은 다양한 문화가 영향을 주고받고 충돌하던 곳이었을 텐데, 그들 사이를 연결해 주던 다리는 전쟁으로 인해 끊어지면서 소설이 끝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주인공의 의미는 아마도 인간사를 초월하면서 인간들을 이어주는 보다 초월적인 차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다리를 밟고 지나다니지만 어쩐지 그들 위에서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콜로비치 출신 베지르의 착안과 경건한 결정에 따라 세워진 거대한 돌다리는 제국의 두 지역을 연결하고 동방과 서방으로 지나가는 것을 수월하게 하는 ‘신의 사랑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동방과 서방 모두를 단절시키고 마치 좌초된 배처럼, 그리고 퇴락한 사원처럼 버려진 것이었다. 3세기 동안 다리는 모든 것들을 감당해 왔고 모든 일들을 경험해왔으며 변함없이 처음의 목표에 따라 봉사를 했지만 이제 인간의 필요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서 다리의 임무는 끝이 나고 말았다. … 그러나 다리는 위대한 베지르가 눈을 감고 명상 속에서 보던 그 모습으로, 석공들이 처음 세웠을 때의 그 모습으로 힘차고 아름답게, 또한 모든 변화의 가능성을 초월한 모습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우뚝 서 있었다.”(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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