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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2>

제르미날! 제르미날! 제르미날!

by 초콜릿책방지기

어느 추운 겨울날 굶주린 상태로 탄광촌에 흘러들어온 에티엔은 인간 이하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알게 된 지식으로 노동운동가로 거듭나게 된다. 매일 지독한 노동에 시달려도 배불리 먹을 수 없고 희망 한줄기 보이지 않는 시커먼 탄광촌에서의 삶에 절망한 노동자들이 함께 들고일어났을 때 에티엔은 가슴 뜨거운 감동을 맛본다. 그 감정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대의의 실현도 있지만, 한 명의 노동자로만 살아왔던 에티엔이 대중 앞에 우뚝 선 존재가 되는 개인적 성취의 경험도 녹아 있는 것이었다.


에밀 졸라는 노동자에게도 노동지도자에게도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당시 인간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 누구도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이전 시대의 소설에서 많이 봐왔던 해결사,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은 이제 여기에 없는 것이다. 그저 우리와 삶을 함께 하면서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어딘가 닮아 있는 야망과 함께 적당한 허영심이 섞인 인물들만이 이 소설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가장 초연한 것처럼 보이는 수바린 또한 어떤 희망적 해결책도 없이 가장 치명적인 행동을 하면서 무정부주의자의 한계를 보여준다.


혁명의 불꽃이 별다른 성과 없이 꺼져버리고, 노동자들이 다시 절망에 빠지고 난 후 에티엔을 원망하는 것은 그가 어설픈 영웅의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희생양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영웅과 희생양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만약 혁명이 성공했다면 신분 상승을 이뤄냈을지도 모른다는 에티엔의 아쉬움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인간적이며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는 너도밤나무 아래 모였던 3천 명의 심장이 그의 심장에 응답하며 뜨겁게 뛰는 소리를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 그는 두 손 가득 인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 저기 모인 저들은 그의 사람들이었고, 그는 그들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가슴 벅찬 꿈들이 그를 도취시켰다. 몽수가 그의 발밑에 있었고, 더 나아가 저 멀리 파리에서 어쩌면 국회의원이 되어 사자후를 토해내고 부르주아들을 호령하면서 국회 연단에서 연설을 하는 첫 번째 노동자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246)


혁명의 실패로 노동자들이 다시 돌아간 르 보뢰 탄광이 수바린의 테러로 무너져내리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무너진 탄광에서는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나고 카트린마저 죽게 되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은 에티엔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에티엔이 평범한 사람에서 영웅적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르미날의 광부들은 혁명에 실패했지만 그들의 미래까지 실패인 것은 아닌 것이다. 에티엔을 원망하던 라 마외드조차 이렇게 말한다.


“… 난 자네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거든, 솔직히 한때는 자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 그 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서 생각해봤지.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 아니야. 이건 절대 자네 잘못이 아니야. 이건 우리 모두의 잘못인 거야.”(360)


소설은 에티엔이 새로운 길을 향해 출발하는 것으로 끝난다. 탄광촌은 전보다 더 나빠진 조건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에티엔이 있다. 적어도 그는 희망에 차 있다는 것이 그 모든 끔찍한 삶에서 볼 수 있는 미래인 것 같다.


“새로운 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다. 낡고 오래된 국가들에 변혁을 가져올 야만적인 침략에 대한 기대 속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임박한 혁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되살아났다.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혁명, 그 진정한 혁명의 불꽃은 저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붉은빛으로 이 세기말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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