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묘하게 이국적인 미국 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결벽증이 있는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몸이나 자신의 공간은 지나치게 느껴질 만큼 청결에 신경을 쓰는데, 그 외의 것에는 더러움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친구 한 명은 집이 외곽에 있어서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자곤 했는데, 그때마다 화장실 변기를 막아놓았다. 한 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휴지를 반통은 쓰고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 변기가 막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는 변기가 자주 막히니까 조심해 달라는 주의를 들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집에 초대해서 놀러 가면, 집안이 너무 깔끔해서 같이 먹고 마시기가 굉장히 신경이 쓰이곤 했다. 소파에 앉을 때도 쿠션의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엉덩이 끝만 간신히 걸치고 앉아있곤 했다. 그런 친구가 우리 집에 올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 부스러기를 바닥에 흘리고 먹던 음식도 자주 바닥에 떨어뜨리곤 해서 그 친구가 가고 나면 청소할 게 많았다. 그렇더라도 차라리 우리 집이 편해서 우리 집으로 자주 부르곤 했다.


둘 다 위생과 청결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일상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그 기준을 적용하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코인』의 화자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몸을 지나칠 만큼 닦아내는데, 행동들을 자세히 보면 결벽에 가까운 행동이 자기 몸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화자가 뉴욕의 먼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강박적 행동으로 보인다. 그런 모습은 나의 결벽증 친구들의 행동처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그 행동의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화자는 팔레스타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그녀가 쓰는 돈은 부모님이 사고로 죽으면서 받게 된 돈인데, 그 돈이 없다면 그녀가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명품 옷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맞닿아 있는 자본주의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의 정체성은 화자처럼 혼돈 그 자체라서, 그녀는 어릴 적 자신이 삼켰던 동전에게 말을 건다. 그 동전은 그녀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돈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지만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어떤 존재다.


“맞다, 나는 동전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슬개골도 아니고 쇄골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괜찮았다. 나는 내 안의 이물질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 작은 은화, 내 가족에게 저주는 곧 열쇠이기도 했다. … 맞아, 네 목소리 또한 변했어. 말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생각해. 그건 나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질문처럼 들렸지. 처음에는 네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어.”(275)


화자가 어릴 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지금 만나는 사람인 사샤도 부모님이 수용소에 있었다는 정보를 통해 추측해 보면 유대인일지 모른다. 자신의 뿌리이자 근본인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거나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스라엘 사람과 어울릴 때 화자는 그 이중적인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에게 정말 좋은 사람들일 뿐인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적이다.


그건 코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동전으로 상징하는 자본은 그녀의 방패막이 되어 주는 것이고 제대로 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지만 언제든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기도 하는 ‘미국 문화’이기도 하다. 그녀가 가르치는 중학생들도 대체로 넉넉하지 못해서 돈 앞에서 정직할 수 없고 약해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기도 하고 일부러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고는 주워가도 모른척하곤 하는 화자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화자는 자신의 트렌치코트를 주워 입은 사람과 명품 되파는 일에 같이 하기도 하고 자기 집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집을 자연 상태로 꾸미기도 하는 등, 기행을 되풀이한다. 결국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는 불에 타서 사라지고 사샤와 트렌치코트도 떠나버리는데, 그 순간에 자기 속에 있던 동전과 비로소 하나가 되는, 완전히 통합이 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결벽증이 있던 그 친구들도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금은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소설의 화자 또한 자신만의 길을 잘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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