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여행기
지금 우리는 여행기를 읽을 때 실용적인 목적이나 대리만족의 경험을 위해 읽곤 한다. 어딘가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곳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내 여행의 계획뿐 아니라 경험의 윤곽까지도 세울 때가 있다. 일상이 지겨워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을 때, 타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이곳을 벗어난 어딘가를 상상하며 조금은 숨을 돌리게 된다.
마르코 폴로가 살던 시절은 (유목민을 제외하고는) 이동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 또한 일부 계층에게만 허용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세계를 그토록 광범위하게 경험한 것을 기록한 것은 여행기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마르코 폴로의 기록이 특이한 점은 보고 들은 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애쓴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의 기록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기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대카안을 칭송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르코 폴로의 감정은 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어느 위치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다니면서 묵었던 여관이라든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면 이 책은 좀 더 생생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행기를 읽으며 화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여행자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과 취향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마르코 폴로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 기록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새로움이었을 것이고 큰 재미를 안겨주었을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보는 당시의 기록들은 무척 흥미롭지만, 이 책이 그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화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그건 이 작품이 개인의 발견 이전, 근대 이전의 작품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르코 폴로가 “우리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백성과 지역과 재화를 소유한 가장 막강한 사람”이라고 칭했던 쿠빌라이 칸과 당시 몽골제국의 영토를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실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릴 때 만화로 보던 “동방견문록”이 그런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신비로운 이야기로만 기억하던 그 여행기가 새삼스럽게 경이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살면서 직접 가서 보고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지금은 당연한 일들이 그때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당시에는 지극히 한정된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여행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들과 동행하게 된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여행 자체도 불가능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본 것이나 그 지역의 수목과 특산물만 중요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지나가며 들은 것과 건너서 듣게 된 소문조차도 유용한 정보였을 것 같다. ‘소금산’이나 ‘보물을 먹게 해서 죽은 칼리프’, ‘산상의 노인’와 같은 이야기들도 그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신뢰를 얻으며 지나가기 위해서는 중요한 정보였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고 있어서 이슬람과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는 않지만, 은자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재밌는 특성이기도 하다. 각 지역의 독특한 일부다처제나 나그네에게 아내를 내놓는 풍습과 같은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섣불리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장점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그 거대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제국을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성과 광대함에 대해 떠올리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