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2>

가장 러시아적인 소설은 무엇일까

by 초콜릿책방지기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므이쉬킨 공작은 “선”의 상징인데 타락한 사회에서 그런 상징적 의미로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나머지를 모두 읽고 나니,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는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신분 질서가 조금씩 와해되어 가는 중이었지만, 예판친 가문의 사람들은 여전히 상류사회를 선망하는 중이며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러시아 상류사회가 보여주는 문화라는 것이 작가가 볼 때는 러시아적이라기보다는 유럽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깊이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작품 안 여기저기에서 드러나는데, 공작이 사교계에 데뷔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작은 상류사회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서 순진하게 감탄하는데,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솔직함과 고결함, 기지와 고상한 품위가 어쩌면 그저 멋진 예술적 모조품에 불과할지 모른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번드레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허한 사람들이었는데, 자기만족에 빠진 나머지 그들이 가진 여러 좋은 점들이 그저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지만 – 이 모조품을 그들 탓으로 볼 수도 없으니, 그것은 유전을 통해 무의식중에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첫인상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이런 점은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388)


러시아 사람들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무신론자가 되기 쉽다고 비판하면서도 공작은 외연적인 모습에 현혹되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중이다. 선하고 순수한 것을 구현하는 인물이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에 반해 폐결핵 환자인 입폴리트는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 날카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하는데, 러시아의 시대정신에 대한 그의 주장은 흥미롭게 들을 만한 것들이 있다. 역시나 장광설을 펼치고 있는 이볼긴 장군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데, 입폴리트와 대조적으로 현실에 대한 통찰보다는 거짓말로 윤색한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둘 다 병들어 있긴 하지만, 병증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비약해서 보면 두 인물을 통해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공작을 가운데 두고 펼쳐지는 사랑의 삼각관계는 이 인물이 ‘백치’인 이유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작은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각자 다른 이유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배타적이라서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스타시야가 공작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든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라고 말하고 있고, 아글라야가 공작을 사랑하는 이유는 여자이자 인간이라서라고 말하는데, 공작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 둘 다 사랑하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사랑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나스타시야가 공작과의 결혼을 앞두고 로고진과 달아난 후 공작을 찾아온 예브게니 파블로치가 그 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공작은 개인적 사랑에 대해서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도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순수하게만 받아들이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공작은 무너져내려야 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생각한다. 귀족 사회와 기존의 가치를 순수하게 답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이제 ‘백치’처럼 보일 뿐이라서 이런 인물은 사라져야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이 읽는 동안에는 산만하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들 자체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작품 안에서 직접 이렇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까지나 ‘범용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려면, 소설가는 이들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며, 독자들 앞에 어떻게 제시해야 할까? 이야기 속에서 이들을 완전히 도외시한다는 건 불가능한 노릇인데, 왜냐하면 이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쇄에서 대부분의 경우 언제나 필요불가결한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개연성의 파괴를 의미한다. 소설을 오로지 선명한 전형적 성격들로 채우거나 혹은 심지어 그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실제로 있을 법하지도 않은 기이한 인물들만으로 가득 채운다면, 전혀 현실 같지도 않거니와 아마 재미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평범한 가운데서도 흥미롭고 교훈적이 면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257)


작가는 미하일 로모노소포, 푸쉬킨, 고골이 가장 러시아적인 문학가라고 언급하면서,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가장 러시아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그걸 구현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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