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성 작가가 보여주는 러시아 소설의 색다른 매력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의 첫 문장에 매혹된다. “소네치카는 유아기를 갓 벗어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이 단 한 문장으로 소네치카에게 마음을 빼앗길 준비가 되어 있고, 이미 동일시가 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우리와 똑같은 취향을 가진 이 인물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각별한 기대감에 차서 읽게 된다. 소네치카가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않고 특출난 재능을 갖지도 않은 데다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마음은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문학의 세계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던 소네치카는 사랑의 열병을 앓은 이후 문학의 세계로 숨어들어 현실의 사랑에는 체념한다. 그런 소네치카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는 유망한 화가였지만 어떤 정치적 일에 연루되어 복역한 후 정부 관리하에 있는 상태이다. 둘은 결혼해서 타냐를 낳고 사는 동안 평온함과 행복을 경험한다. 소네치카는 결혼 생활을 통해 현실에 더 붙박이게 되지만 로베르트는 자신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다 타냐의 친구인 야샤를 만나서는 예술적 세계가 활짝 피어나게 되고, 그걸 알아챈 소네치카는 불륜관계를 눈감아줄 뿐 아니라 야샤를 적극적으로 자기 딸로 받아들인다. 타냐는 자기 길을 찾아서 떠나고 로베르트는 야샤와 지내게 되면서 소네치카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소네치카는 로베르트가 먼저 죽고 난 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내어 후한 평가를 받게 했고, 타냐와 야샤 모두 떠난 후에도 혼자 러시아에서 여생을 살아간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물론 러시아 문학이다.
“저녁이 되면 그녀는 배를 닮은 코에 가벼운 스위스제 안경을 걸치고 달콤한 심연, 어두운 가로숫길, 봄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든다.”(95)
줄거리만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통속 소설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소설이 특별한 것은 소네치카라는 인물이 러시아 문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소네치카는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뿐 아니라 이류 문학으로 분류되는 작가들마저 기꺼이 사랑한다. 로베르트가 프랑스 문학을 더 가치 있게 보는 것과는 달리 소네치카가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소네치카는 러시아 문학처럼 투박하고 꾸밈없고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않다. 그녀가 보여주는 삶 또한 러시아 문학 같아서, 운명이 가져다주는 역경과 어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해 내고 행복은 주저하며 받아들이면서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러시아 문학을 인물이라는 상징으로 그려낸다면 바로 소네치카가 되는 것이다.
「스페이드의 여왕」에는 4대에 걸친 여인들이 함께 등장한다. 무르는 아흔이지만 여전히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스페이드의 여왕’이다. 안나 표도로브나는 무르의 문란한 생활 중 유일하게 고결하게 태어난 자식이다. 그녀에게는 카탸라는 딸이 있고, 카탸에게는 그리샤와 레노치카라는 자식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한집에 살고 있다. 어느 날 헤어진 안나의 남편 마레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스위스로 그들을 초대하면서 균열이 생긴다. 안나는 물론이고 가탸도, 손녀인 레노치카도 무르에게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어서 남자를 데려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마레크가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마레크는 무르가 사람을 미쳐버리게 하는 ‘스페이드의 여왕’이라고 칭하면서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 하지만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무르에게서 그들은 결국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어쩐지 러시아 신분 질서의 상징처럼 보인다. 무르는 제정 러시아 시절의 귀족계층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고, 의사인 안나는 전제군주제가 폐지된 이후에 등장한 인텔리겐차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탸 이후의 세대는 아무래도 신분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난 이후의 평민들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레노치카가 유학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에서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무르가 끝까지 자식과 손자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하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만 고집하는 이전 세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과거의 영광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무르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걸림돌처럼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찬란하고 빛나던 영광의 한때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의미는 러시아 여성 작가가 여성 인물들을 통해서 가장 러시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처럼 장황하게 철학적 사변을 늘어놓는 방식도 아니고 유리 올레샤처럼 포스트모던한 형태로 말하는 것도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듯 보이는 인물들을 통해서 러시아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가만의 개성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