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위대한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위대한’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개츠비의 몰락을 보면서 어떤 것에서 ‘위대한’ 점을 찾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츠비라는 인물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지, 닉의 시선에서 바라본 개츠비의 위대함을 찾아야 할지, 당대 미국 역사의 맥락 속에서 찾아야 할지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이 단어의 의미를 고민하다 보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배제하고 한 인물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 소설은 미국 작가가 쓴 미국 소설이고,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무리 과거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미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시간이 쌓여서 현재의 미국이 된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는 것은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정치적 구호이고, 이 슬로건 안에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 이 단어는 각별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은 단순해 보이는 줄거리를 닉이라는 화자를 등장시켜서 조금 더 풍부한 의미를 띠게 만들고 있는데, 닉은 등장인물 중 가장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화자의 시선을 믿고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닉은 중서부의 부유하고 탄탄한 집안 출신으로, “안내자요 길잡이이며 초기 개척자” 역할을 했던 집안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1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보니 이제 중서부의 번영은 사그라들고 동부가 주식과 금융의 중심지로 타오르는 중이라서, 닉도 동부로 향한다. 그곳에서 닉은 동창이었던 톰 뷰캐넌과 먼 친척인 데이지를 만나고, 이웃집에 사는 개츠비까지 만나게 된다. 전통적인 부자였던 톰과 신흥 부자인 개츠비를 동부에서 모두 만나면서 닉은 “동부가 더 우월하게 느껴지지만 어쩐지 뒤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닉은 톰 부부의 초대와 개츠비의 파티를 통해 그곳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는데, 톰과 데이지는 물론이고 잠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조던 베이커를 비롯해서 톰의 정부인 머틀, 스쳐 가는 다양한 사람들 모두가 거짓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오직 개츠비만 눈에 띄는 특징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11)
개츠비가 간직하던 희망과 낭만적 민감성은 톰과 데이지를 비롯한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발견할 수 없었던 특징인데, 아마도 그건 톰과 데이지처럼 전통과 부를 이미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인 “American Dream” 또한 개츠비 같은 인물에게 필요했던 것이지, 전통적 상류층에게는 상관없는 가치였을 것이다. 개츠비는 개척민의 후예로서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라서, 결국 미국이 바라는 상징, 미국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낸 인물로서 “위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눈으로 보면 이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닉의 소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를 하고 있어서 충분히 문학성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세계문학 순위에서 상위권에 회자될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이 그만큼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그만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드는 것이 크게 억울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작품이건 시대적 흐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