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명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by 초콜릿책방지기

SNS에서 먼저 친해진 사람을 현실에서 만난 적이 몇 번 있는데, 매번 조금씩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만날 때 상상했던 사람과는 현저하게 다른 사람일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외적인 면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곳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던 직업이나 생활과 사뭇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세련된 감각 덕분에 잘 나가는 디자이너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밀린 월세 때문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이었을 때도 있고, 반대로 소박하게만 보이던 사람이 상당한 부자였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히 SNS에 글을 쓰고 있던 사람과 현실에서 마주친 사람도 동일한 사람일 텐데,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2009년에 나왔다는 이 소설은 휴대전화와 사이버 세계가 막 무르익어 가려는 시점에 나온 셈이다. 통신 기기를 이용하면서 다시 규정되어야만 했던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수록된 단편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장편처럼 읽히기도 한다. 마치 직장 내의 나와 사이버 세계의 나, 가족 관계 안에서의 나와 연인과의 관계 안에서의 나가 각각 다른 자아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도 각 인물들의 보여주는 각기 다른 특징이 작가가 가진 여러 개의 자아의 발현이지만 결국 하나로 묶이는 이야기가 되듯 한 작가에게서 나온 이야기라는 말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인다.


<목소리>의 주인공 에블링이 랄프라는 사람과 중복된 번호를 갖게 된 사고는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의 주인공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벌어진 사고와 연결이 되는데, 묘하게 제목의 의미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위험 속에서>에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는 의사 엘리자베스와 작가 레오 리히터가 나온다. 레오가 만든 소설 속 인물인 라라 가스파드는 엘리자베스를 모델로 한다고 하고 엘리자베스는 레오가 썼다고 하는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의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인 안락사 하러 가는 노부인 이야기를 읽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에서는 본격적으로 작가와 로잘리에가 작품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췌장암에 걸린 로잘리에가 스위스로 죽으러 가면서 작가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겹치고 섞이고 속해 있는 데다 작가까지 들어가 있는 메타픽션인데, 마치 우리가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이 든다.


<탈출구>에서는 <목소리>에서 이름만 언급되었던 랄프가 배우로 등장하는데,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 구조이며 정체성에 관한 클래식한 질문인 셈이다. 이 이야기와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동양>은 마리아 루빈스타인이라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없을 때 사라져 버리게 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뒤에 나오는 <위험 속에서>라는 이야기에서 레오가 다시 언급하는데, 마리아는 실종되고 나서 더 유명해진 작가라고 말하면서 작가적 명성은 단순히 문학성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토론에 글 올리기>의 주인공 몰비츠는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의 주인공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현실 세계의 그는 마마보이에다가 회사 일은 엉망진창인 지질한 남자이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사람이다. 출장 중에 레오를 만난 그는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는 문제의 통신 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휴대전화로 거짓말을 하며 불륜을 하는 이야기다. 루치아와 한나 사이에서 정체성 문제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의 단편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서 작품의 의미를 더 확장하는 동시에 자잘한 재미를 더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각 인물들을 통해서 조금씩 다른 정체성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SNS에서 만난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 만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뿐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서 만날 여러 개의 자아들이 좀 더 현실적인 실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밑줄 친 문장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걱정에 갇혀서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잘 못 본다는 사실을 종종 깨달았다.”(44)
“미안하지만 난 소설 따위 관심 없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잖아.”(64)

“기술력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한정된 장소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람들은 행방을 감춘 채 말하고,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며, 또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이 모두 기본적으로 사실이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입증할 수 없다면, 나조차 내가 있는 곳을 완전히, 또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누가 알겠는가?”(165)

“작가란 자신이 본 걸 함부로 지껄이는 직업이 아닌가.”(186)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섞이지. 책에서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거야.”(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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