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슈베르트의 가곡도 같이 들어보세요.

by 초콜릿책방지기

클래식 음악을 종종 듣기는 하지만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다른 음악과 달리 일부 선율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고 귀에 익숙한 그 선율을 빼고 다른 부분을 들려주면 어떤 곡인지 금방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일상의 배경처럼 틀어두기에는 클래식 음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잘 알고 있는 선율이 계속 나온다면 자꾸 따라서 흥얼거릴 텐데, 클래식 음악은 그럴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자우메 카브레의 단편집은 클래식 음악과 닮았다. 일부 이야기는 익숙해서 편안한데, 나머지 부분은 낯설어서 마치 한 편의 클래식 음악을 모두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악장마다 들어가 있는 흐름이 단편 하나하나에 반영되어 있는 듯해서, 전체적으로 조화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안에 속해서 한 작품의 일부로써 기여하는 것과 같은 특징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수록된 단편인 <사후 작품>은 피아노 연주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단편집 제목과 조응해서 문을 열어주기에 좋은 작품이다. 유능한 연주자였던 페레 브로스가 연주장에서 슈베르트를 보고 공포에 휩싸여서 슈베르트의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을 연주하게 되는 것은 작품 전체의 메시지에 대한 암시처럼 보인다. 그리고 페레 브로스가 연주자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전에 전화를 거는 졸탄 베셀리니는 마지막에 수록된 <겨울 여행>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어서 처음과 끝을 연결해 놓은 셈이 된다. 음악에서는 열린 결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작과 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단편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처럼 던져두는 피셔 리게티의 선율이나 램브란트의 그림, 슈베르트나 시벨리우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면 전체 내용이 연결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처럼 이어지는 그 단서들이 마치 한 가닥의 선율처럼 가늘고 길게 하나로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강렬하면서도 읽고 나면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유언장>의 아구스티가 아내가 죽고 난 후 세 아이와 슬픔을 나누고 난 뒤 자신이 불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과 <손안의 희망>에서 오르간 제작자 올레게르 괄테르가 사고로 감옥에 갇힌 후 딸의 편지를 기다리다 탈옥을 하려는 순간 편지를 받고 탈옥을 포기하게 되는 이야기, <이 분>에서 각자 바람나 있는 부부 이야기, <먼지>에서 책에 빠져 있는 아드리아와 그의 집을 청소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 빅토리아의 이야기, <보석 같은 눈>에서 남을 속이는 뛰어난 말재주를 가진 다이아몬드 세공사가 제 꾀에 넘어가게 된 이야기 등은 현대판 이솝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꿈>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이름 뒤에 페킷을 덧붙여서 가상의 인물로 만든 뒤, 그에게 지능이 떨어지지만 음악적 재능을 가진 고트프리트라는 아들을 만들어주고 가상의 불협화음이 열어주는 새로운 음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음악을 제자인 카스파어가 불에 태워버렸지만 그것은 다시 카스파어에 의해 다른 단편에서 살아나기도 한다. <나는 기억한다>에서는 아홉 살에 자신이 참지 못하 기침 때문에 온 가족이 몰살하게 되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자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발라드>에 나오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이 군인이 되어 엄마를 제 손으로 죽이고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야기처럼 인간 역사의 끔찍한 한 장면들을 소환한다.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의 인물과 <흔적>의 주인공은 동일한데, 이 별볼 일 없는 문제투성이 키킨이라는 인물이 좋아하는 음악은 놀랍지 않게도 클래식이 아니라 록 음악이다. <빵!>과 <협상>의 내용은 청부살인과 엮인 주교들, 램브란트 그림에 관한 것들인데 복제품에 관한 언급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진품이 없으면 복제품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데 복제품 덕분에 진품이 더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예술이라는 장르는 언제나 이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과 연결이 된다.


수록된 단편들이 모두 둘씩 혹은 서너 개씩 짝을 지어있는 것 같은데 그 연결과 변주를 발견하는 재미도 이 작품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산만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작가의 메시지는 아무래도 이 대목인 것 같다.


“하지만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서사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제멋대로 보여준 채, 아닌 척 모호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속이려 든다.”(49)


운명이 우리를 속이는 것인지, 우리가 운명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속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편집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일부분을 보면서 우리는 결코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심포니든 소나타든 음악의 세계 또한 아는 만큼 보이겠지만, 어떤 한 대목만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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