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조율사>

연주자들의 섬세한 내면 세계를 볼 수 있는 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엄마한테 등 떠밀려서 다녔던 피아노 학원은 재미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유행처럼 배우던 피아노여서 학원은 언제나 붐볐는데, 매번 레슨실이 꽉 차 있어서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대기실 한쪽에 어린이를 위한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이 있어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고, 사실 피아노 레슨보다는 대기실에서 책을 읽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셈이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엄마는 피아노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은 집에 피아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집에 피아노를 들여버렸다.


당시 보급형 피아노의 양대 산맥이던 삼익과 영창 중에서 엄마는 삼익을 골랐는데, 텔레비전 광고에서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영창!" 하는 CM송이 나올 때마다 엄마의 선택이 아쉬웠다. 피아노 연주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체르니 100번은 떼어야 했기에 집에 들여놓은 삼익 피아노를 뚱땅거리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영창이 아니라서 제대로 연주가 되는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연주할 때는 보잘것없던 그 피아노가 조율사가 한 번씩 집에 와서 조율해 줄 때는 경이로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피아노보다는 조율사가 경이로운 존재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내게는 느껴지지 않던 미세한 음의 차이를 조율하고 나서 나에게 한 번 연주해 보라고 했을 때, 차이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그 순간 피아노가 내는 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품질일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기 그 경이롭게 보이던 피아노 조율사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 대머리에 커다랗고 볼품없는 귀, 여드름으로 인한 흉터까지 잔뜩 있는 사십 대의 피아노 조율사 후이루. 외모에 대한 묘사를 읽고 나면 작가가 조율사를 미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율사가 주인공이 된 이유는 그가 "음악에 영혼이 사로잡힌 육체"라는 사실 덕분이다. 피아니스트 에밀리의 학원에서 조율사로 일하던 그는 에밀리가 암으로 죽고 난 뒤 남겨진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에밀리의 남편인 린쌍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보다 스무 살 어린 에밀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공허함에 방황하던 린쌍은 후이루의 연주를 듣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빈자리를 채우는 듯하지만, 연주자로서의 삶은 실패하고 조율사의 길을 택한 후이루는 자신의 과거를 떠나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긍정하지 못한다. 후이루가 린쌍의 태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성적 정체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는 동성애적 코드보다는 음악적 정체성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둘이 뉴욕에 갔을 때 피아노 판매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줄리어드 출신 음악가들과 길거리 연주자들을 통해 수없이 많은 음악 전공자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데, 그나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조차도 무명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 후이루가 가진 절망과 열등감은 "음악에 영혼이 사로잡힌 육체"들에게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민하고 섬세하다가 때로는 격정적인 내면을 보여주는 서술은 마치 피아노의 선율처럼 느껴지는데, 리흐테르와 글렌 굴드를 비롯한 다양한 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선율들에 덤으로 얹은 박수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갑게 읽을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또한 낯선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던 피아노 조율사와는 사뭇 다르지만, 보다 인간적이라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조율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조율사라는 단어를 보면, 삼익 피아노보다는 궈창성의 소설이 먼저 떠오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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