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
분명히 내가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날 때 느낀 감정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얀 안델손의 생각과 비슷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내 삶이 완전히 바뀌어서 더 이상 이전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아득한 절망감이 엄습하는 동시에, 어째서 이런 결과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어버렸다는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 감정들과 함께 소위 말하는 생명 출산이라는 자연법칙, 그런 것이 선택 가능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어른들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하려는 순간, 정신없이 닥쳐오는 먹이기와 재우기, 기저귀 갈아주기, 목욕시키기 등등의 의무에 떠밀리다 보면 어느 날, 어떤 꼬물꼬물한 작은 생명체가 까만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 눈을 보고 나면, 얀 안델손처럼 이전의 심장은 사라지고 새로운 심장이 자리 잡게 된다. 새로운 심장은 자신의 삶 속에 새로운 생명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생명체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을 수도 있게 만든다. 그런 순간은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일이라서,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얀 안델손의 변화를 마법처럼 보여줘야만 했을 것이다.
스크롤리카라는 외딴 마을에서 사는 얀 안델손은 지긋지긋한 머슴살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짓고 카트리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아이가 생길 것을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고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던 얀은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마치 자신의 심장이 새로 바뀐 것처럼, 그래서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처럼 인식할 정도다. 얀은 아이에게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뜻을 가진 “클라라 피나 굴레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클라라가 있는 얀은 이제 가난뱅이 머슴이 아니라, 남들에게 자랑할 보물이 있는 사람이다. 클라라가 그저 평범한 아이 일지라도, 얀에게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부모에게는 영재로 보인다든가, 천부적인 끼를 타고난 아이처럼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일이 얀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클라라의 크고 작은 흠결도 사랑으로 모두 품으며 키우던 얀은 아마 그런 생활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모두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사실 떠나야만 한다. 부모님의 빚을 해결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클라라도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떠나버린다. 얀은 클라라의 의도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가족의 품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한다.
소식도 제대로 전하지 않는 클라라를 기다리며 살던 얀은 어느 날부터인가 딸이 포르투갈의 여황이 되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딸이 여황이기 때문에 자신은 황제라고 믿으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클라라가 나쁜 길로 빠져버렸다는 소식을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얀을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얀은 그 사실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얀 씨가 그 지경이 된 건 아냐. 아비로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지. 그 깊고도 무거운 사랑이 없는 삶을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265)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딸에 대한 얀의 지극한 사랑을 봐왔기 때문에 얀이 그리움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렸다고 생각한다.
클라라를 마중하러 매일 선착장을 찾아간 지 무려 15년이 흘렀지만 얀은 그곳에서 클라라를 맞이하지 못했다. 클라라는 기차를 타고 돌아왔고, 포르투갈 황제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클라라는 스톡홀름에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며 간신히 마련한 집으로 부모님을 데리고 가기 위해 돌아왔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는 두고 어머니인 카트리나만 몰래 데리고 가려고 한다. 둘이 증기선을 타고 떠나려는 순간, 얀이 달려와서 물에 뛰어들어 삶을 마감한다.
클라라는 죽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데, 그건 얀의 사랑의 크기를 모르던 자식이 할 법한 생각일 뿐이다. 얀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클라라를 노리는 “오만과 냉혹함, 탐욕과 욕망”을 걱정했을 뿐이다. 그 위대한 사랑이 축복으로 돌아온 덕분에 클라라는 다시금 얀이 붙여준 자신의 이름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내 삶을 기꺼이 내놓게 하는 새로운 심장을 만들어준 아이라는 존재는 이전에 알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사랑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조건 없이 품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태어난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자신을 부정하거나 거절하지 않은 기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다양한 질곡 앞에서 일어날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에게 그런 기둥이 된다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