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 한 인간의 소박한 꿈
겨울은 책방 운영이 몹시 힘든 시기인데,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이유도 있고 명절을 비롯한 긴 연휴가 소모임을 위주로 운영하는 책방 손님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면 언제나 돈을 좀 더 벌어야겠다는 욕망이 커지는데, 그럴 때마다 자본주의에 적응하려는 ‘인간적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오고 가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감정의 밑바닥까지 끌어올리며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것이다.
지금 시대와 이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서 그런 태도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인데, 데니스 존슨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삶의 공간은 많이 다르지만, 그레이니어라는 인물만 가만히 바라보면 나와 그리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삶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니어는 술과 나쁜 것을 멀리하고(이건 술을 좋아하는 나와 사뭇 다른 특징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릴 적에 부모를 잃어서 고모 부부 밑에서 자랐고, 10대 때는 좀 빈둥거리기도 했지만 철이 든 후에는 자기 앞가림은 잘 해온 사람이다.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 올딩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고 케이티라는 딸도 얻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몇 달씩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벌목일을 하다가 돌아온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할 수 있는 일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자기 몫을 살아가는 사람인 셈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호기심에 돈을 내고 뚱뚱한 남자를 보러 간 것이라든가, 앨비스 프레슬리를 봤다고 생각하는 것, 핑컴 부부의 손자인 행크가 죽는 걸 실제로 본 것, 1927년에 복엽 비행기를 탄 것과 같은 것들을 기억한다.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중국인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담했던 것이라든가, 죽어가는 윌리엄 코스웰 헤일리를 도와주지 않은 것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일에 대한 벌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고 한다면, 그 벌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이렇게 그레이니어가 겪은 사건들을 아주 간결하게 스치듯 보여주는데, 그건 마치 일생을 통해 한 인간의 삶에 남은 굵직한 기억만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언뜻 보면 그런 사건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레이니어라는 한 인물의 삶 속에서 이야기할 만한 것을 추리자면, 그리고 이 인물을 잘 보여주는 것만을 가려내자면, 소설 속 에피소드들만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은 대체로 이럴 것이다. 선량하게 살다가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가버리는 그레이니어와 같은 사람의 삶은 자연의 흐름을 닮아있다. 그는 강한 인간적 의지로 운명을 돌파해 내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닥친 불행에 무너지거나 운명을 탓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집을 짓고 살아간다. 죽은 아내가 유령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진 딸이 늑대 소녀가 되어 나타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레이니어가 인간적 의지가 강한 진취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과부가 된 클레어 톰슨과 다시 결혼할 수도 있었을 테고 산골짜기의 집에서 벗어나서 다른 일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적 의지와 욕망에 굴복하기보다는 자연과 동화된 삶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가 되거나 골목 구석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어떤 책방 운영자처럼 시대를 거슬러 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흐름에 잘 올라타지도 못했다.
그가 1935년의 공연에서 본 늑대 소년은, 늑대는 아니지만 늑대의 흉내를 내는 가짜 괴물이다. 그 소년이 비정상적으로 낸 소리는 늑대의 소리도 아니고 사람의 소리도 아닌, “배의 경적 소리, 기관차의 외로운 기적 소리, 오페라 가수의 노랫소리, 플루트 소리, 계속 신음하는 것 같은 백파이프 소리 등 비슷한 모든 소리의 출발점인 이상적인 소리”였다. 그 소리 속에서 암흑이 되고 시간이 영원히 사라졌는데, 그에게 다가온 시대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소리 속으로 다 빨려 들어가고 남은 시대다. 더 이상 ‘코요테-사람’이나 ‘곰-사람’ 같은 걸 믿는 시대가 아니라서 인간은 자연과 완전히 결별했고, 유령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늑대 소녀는 사라지고 늑대를 연기하는 가짜 늑대 소년만 남았다.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떠났는데, 인간이 자연 속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애써 무언가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의지와 욕망을 누르고 살아간 겸허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인간적 의지'에 대해서 다시 처음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