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폭스트롯>

오렌지족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by 초콜릿책방지기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강남 일대에서 세련되게 차려입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갔다가 밤이 되면 외제 차를 타고 나이트클럽에 가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이 선도하는 유행을 따라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비판하는 언론도 있었고, 부러워하거나 배 아파하는 젊은이들도 더러 있었다. 오렌지족만큼 부를 과시하지는 못하지만 엇비슷하게 보일 만큼 꾸미고 다니는 아이들을 낑깡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 쌓은 부를 이제 막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계층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데다 서구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에 관한 뉴스에 나오는 것과 동시에 성장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판자촌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퇴폐적 도시 문화와 무질서하게 섞여 들어오는 외국 문물과 빈부격차를 우리는 90년대에나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상하이에 살던 사람들은 30년대에 이미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걸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무스잉이 보여주는 도시의 타락과 부의 과시는 우리의 90년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위대한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가 보여준 미국 동부의 모습은 다른 계층은 지워진 상류층만의 욕망이었다면 무스잉이 보여주는 상하이는 하층민과 상류층의 욕망이 동시에 존재해서 보다 복합적이며 질척한 느낌이 들게 한다.


작가는 상하이가 보여주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즐비한 외제 차 아래에는 지옥 같은 삶이 분명히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상하이 폭스트롯」에서는 화려한 나이트클럽과 호텔을 드나드는 인물 아래로 그런 건물을 짓던 사람이 나무 기둥에 깔려 죽는다. 「거리 풍경」에서는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젊은 연인들 옆으로 늙은 거지가 앉아 있다. 그는 상하이에 전깃불도 없던 시절에 먹고살기 위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지만, 결국은 기차에 깔려 죽고 만다. 「팔이 잘린 사람」의 벽돌 공장 노동자도 팔이 잘리기 전까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행복을 꿈꾸었지만 팔이 잘리고 난 후에는 불구가 된 몸만 남게 되는데, 공장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대체 인력 또한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어서 공장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도시로 들어온 사람들은 분명 성공의 열매를 얻고 자본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한 욕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좌절되었을 경우는 하층민으로 전락해서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삶에 취해 지쳐버린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행복하지 않다. 성공을 한 경우라도 「나이트클럽의 다섯 사람」에 나오는 황금왕 후쥔이처럼 금값이 폭락해서 망해버리고 나면 자신의 목숨도 쉽게 내던진다. 그래서 작가는 서슴없이 이 도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삶, 나이트클럽 사람들의 운명을 노래한다! 상하이가 깨어난다!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 상하이.”(71)


이 도시의 인간관계는 「심심풀이가 된 남자」나 「검은 모란」에서처럼 모두 일방통행이며 제대로 된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진 경우는 「공동 묘시」에서처럼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인물들은 모두 불안과 신경증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작가는 똑같은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그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에서는 1930년대 융성했던 상하이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불안과 강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분위기에 더해서 몽환적인 느낌도 있지만 분명한 묘사와 서술이 필요한 곳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서 미숙하다는 인상이 들 때가 종종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오렌지족을 기억하는 사람이거나, 제대로 된 문화적 틀을 갖추지 못한 채 얻게 되는 부가 인간에게 어떤 모양새로 나타나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거나, 가끔 향락과 퇴폐적인 감각이 그리워지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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