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수작
오랜만에 깊은 여운이 남는 소설을 읽었다. 현대 소설의 긴장과 새로움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있을 텐데, 이 소설은 열다섯 살 소녀 에시의 시선을 따라가게 만든 덕분에 긴장과 새로움이 생겼다. 에시는 우리에게 자기를 둘러싼 세계이자 자신의 모든 것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가족 이야기야 특별할 것은 없지만, 지독하게 가난한 흑인 가정이라는 조건 아래서 살고 있는 에시 가족 이야기는 에시를 통해서 조금 특별해진다.
에시는 아빠와 큰오빠 랜들, 둘째 오빠 스키타, 동생 주니어와 함께 흑인 구역인 부아소바주에서 산다. 엄마도 없고, 여자 형제도 없는 에시는 오빠의 친구들이 해오는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에시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쉽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무분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하며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고, 남자 형제들은 각자의 일로 바쁘다. 랜들은 농구를 잘하는 특기를 살려서 대학을 진학하길 원하고, 스키타는 자신이 키우는 투견 차이나를 잘 훈련해서 돈을 벌기를 원하고, 주니어는 이제 일곱 살이 된 어린아이일 뿐이다. 에시는 무방비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의논할 대상도 없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기 바쁜데, 마당에서 제멋대로 크는 닭들이 낳은 달걀이나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고 살림까지 알아서 책임지면서 살고 있다. 그 와중에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보를 들은 아빠가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며 준비를 하긴 하지만 신통치는 않다. 에시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이렇고, 선택의 여지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에시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매니 오빠가 아이의 아빠가 확실한 것 같으니 책임져주었으면 하는데, 매니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삶의 질서, 사회적 복지, 가족의 보살핌 등 어느 하나에도 기댈 곳이 없는 에시는 매 순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메데이아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에시에게 매니는 이아손이라서, 메데이아처럼 생각하다 보면 매니에게서 떨어져 조금씩 더 주체적인 상태가 되어간다. 그리고 에시의 눈길이 자주 닿는 곳은 형제들의 몸이다. 깡말랐지만 근육이 단단하게 잡혀서 생명력이 가득한 그 몸들은 에시가 함께 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댈 수 있는 대상들이다. 바짝 다가와서 위협을 가하고 있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앞에서 아빠는 결국 불구가 되고 말지만, 오빠들의 까맣고 탄탄한 몸들이 해결책을 찾아낸다.
사실 이들에게는 타고난 몸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데, 그 몸들이 서로에게 손을 뻗어서 위기 상황에서 구해내주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 스키타는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는 차이나보다는 에시가 더 먼저라는 걸 위기 상황에서 보여주면서 이들이 가진 힘은 결국 가족애라는 걸 말해준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가족애가 보통의 미국 소설이 보여주는 가족애의 통속적인 면과 다른 것은, 아무도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기댈 곳이 오로지 가족뿐이라서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반야생의 상태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에시를 화자로 택했기 때문에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취약한 동시에 생명을 잉태할 수 있어서 가장 강력한 사랑의 상징이 된 에시는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관조하는 힘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에시가 감정이입을 하는 그리스 신화 덕분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에시는 신화에서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에시는 신파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고 차이나처럼 당당하게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카테고리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 소설, 여성 소설, 가족 소설, 재난 소설, 혹은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소설이라고.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이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살아남기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에시 가족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마치 스릴러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모양새는 다르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중이라서, 이 소설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