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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34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결국 11월을 마지막으로, 1년 5개월 동안 해오던 장터를 접었다. 접으려고 결정하고 나니, 좀 더 일찍 결정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가 좋지 않은 일이 모두 그렇지만, 끝을 결정하는 일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시기를 적절히 잘 정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력이 필요할 순간에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


책방을 하면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 사실은, 나는 일을 시작할 때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저질러버리지만 끝을 잘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장소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행사를 기획하거나 시작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획한 행사를 잘 홍보하고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행사가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맺음을 하는 것이다. 끝을 만드는 것은 어떤 영역에서나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거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인연이 잘 유지되지 않았을 때 잘 헤어지는 것, 끝을 잘 맺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명함과 참을성, 결단력 모두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잘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함과 그 상황을 잘 견디는 참을성, 그리고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단력이 잘 조화되어야 괜찮은 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책방에서 하는 행사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일방통행이다. 책방의 모든 행사는 내가 시작했기 때문에 내 손으로 끝내야만 한다. 그런데 일단 만들어놓은 행사를 끝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그 행사에 주었던 내 마음과 노력을 다시 거둬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지지부진하거나 질척거린다. 참 찌질한 일이다. 현명함과 참을성, 결단력 모두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토요장터에는 미련이 많이 남았던 행사였다.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책방을 하다 보니, 내가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분야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서서히 깨달으면서 책방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책방이 나를 키워주고 있는 것 같다. 책방과 내가 함께 커 갈 수 있다면 가난해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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