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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 이상하게 독서하기 좋은 곳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문장 한 줄

by 초콜릿책방지기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전체적으로 움츠러들어 있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소식에 종종 우울해지는데 계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뀐 얼굴로 찾아오고 있다. 겨우내 바싹 말라있던 경로당 텃밭의 흙에서 초록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부추 잎들이 손가락 크기만큼 올라왔다. 저 부추들이 다 자라기 전에 경로당이 문을 열어야 할 텐데, 2월 한 달 동안 내내 굳게 닫혀 있던 경로당은 아직도 언제 문을 열지 알 수가 없고 경로당 문 앞을 지날 때마다 이곳을 드나들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진다. 책방 화장실을 가려면 경로당 앞을 지나쳐야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안녕을 걱정하는 마음은 화장실이 급할 때마다 생기게 되는 셈이다.


책방이 있는 건물 옆집에서 자라고 있는 목련은 봉오리가 이미 꽉 차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기찻길 옆으로는 조만간 개나리가 피어날 것이다. 계절의 얼굴이 변함없으니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바이러스 때문에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반복된 일상이 흐트러지고,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쩌면 봄도 이상하게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상상도 생기게 된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을 경험하다 보면 평범하게 찾아온 봄이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요 근래 책방에는 조용히 책을 읽으러 오는 손님이 조금 늘어난 것 같다. 매출이 늘진 않았지만, 책을 읽으러 오는 손님이 늘어난 것은 반갑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손님처럼 나도 예전보다 더 평온하게 책을 읽는다. 조금 우울할 때는 유배지에 있는 상상을 하면서, 햇살이 밝고 하늘이 맑은 날에는 휴양지로 요양하러 간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서로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서, 전보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적어져서 책을 읽기에 더욱 좋아졌다. 토요 독서모임인 "위;북" 멤버들은 점점 난이도를 높여가며 도서목록을 정하고 있고, 우리는 모두 질세라 가열하게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상한 날은, 공기의 흐름 속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날은 취하도록 술을 마신다. 그렇게 술을 마시며 사랑이라든가 자신의 삶 혹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다가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들을 조금씩 해본다. 그런 다음에는 함께 읽은 책에서 본 인물들을 이해하듯, 서로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고 시간의 흐름에 기억을 맡겨버리고 다시 또 열심히 책을 읽는다. 서로가 낯설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친근하다. 초콜릿 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지금 같은 상황을 견뎌가고 있다. 지금의 모습들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기억될 것이 어떤 것일지 알 수 없고 그것이 꼭 좋은 것일 거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불가해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많이 읽었던 책들은 오래도록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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