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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 이렇게 봄날이 간다.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뚜렷한 대상을 알 수 없이 그리움이 커지는 날들이다. 사실 그 대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창밖을 한 번 내다보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바깥에서는 한창 바람에 꽃잎이 살랑이고 있는 중이다.


봄바람이 불면, 마음속으로도 따스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스며들어온다. 그 바람은 겨우내 잊고 지내던 감정들을 깨우고 불러일으키는데, 그중 가장 커다란 감정이 그리움이다. 꽃망울이 터지고 작은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면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 문득 궁금해지고, 어딘가 멀리 그 바람이 시작되었을 것 같은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파릇하게 솟아오른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찬바람에 웅크리고 있다가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햇살의 손길까지도 다정한 듯해서, 떠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보통 사소하고 따뜻한 추억들이다. 함께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고, 거리를 걷던 기억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가기 전까지 오래도록 자주 생각하다 보면, 꽃이 떨어질 즈음에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게 된다.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주로 그저 안부만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했던 봄날의 시간이 내게 남아있게 된다.


온화해진 날씨는 사람뿐 아니라 그동안 가본 적이 있는 아름다운 곳들을 생각하게 한다. 코끝을 스치는 어떤 향기는 때로는 강변의 공원을 생각하게 하고, 연한 초록빛 나무들은 언젠가 갔던 캠핑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아직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 공기와 청명한 하늘은 불현듯 충동적으로 찾아갔던 동쪽의 바다를 그리워하게 한다. 그리움이 커지다 보면 봄날의 즉흥을 핑계 삼아서 생각났던 곳 어딘가로 훌쩍 떠날 텐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으니 그리움은 더 커지고 그 모든 것이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나고 나면 더 분명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이번 봄의 그리움이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기억도 변색이 되어 가까운 사람들과 도와가며 잘 견뎌낸 봄이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실내에 갇혀 병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봄날이 가고 있지만, 어쩌면 그동안 저 바깥의 봄이, 내게 그리움을 주던 저 연둣빛과 선한 빛깔의 꽃들과 따스한 바람이 오히려 나를 견뎌왔던 것은 아닐지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숨 죽이고 조용히 봄날을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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