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마음이 복잡해질 때는 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글을 쓴다. 문장으로 정리를 하다 보면 일단 흥분되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하나씩 차분하게 문제의 원인을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매출이 나오지 않는 원인은 너무 다양해서 한 번에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문장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휘몰아치던 감정이 이성으로 전환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날은 생일이었다. 아침에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을 신나게 먹고 기분이 아주 괜찮은 상태로 책방 문을 열었다. 시끄럽고 먼지 나던 옆 건물의 공사도 쉬는 모양이었다. 조용한 가운데 햇살만 산뜻하게 책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유롭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 마시면서 토요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방은 시원했고, 책은 잘 읽혔다. 지나치게 잘 읽혔다.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책을 다 읽는 동안 책방에 들른 사람은 전날 주문한 책을 배달해준 아저씨밖에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시원한 책방에서는 나 혼자 자유를, 아주 미친 듯이 지겹도록 만끽하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을 떨치려고 책방 안 화분에 물을 주고 누렇게 변한 잎들을 정리했다.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동안 살펴주지 못했던 것을 자책하며 화분의 방향도 조금씩 바꿔주었다. 식물과 교감하는 시간도 참 소중한 시간이라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생일이라서 좀 더 잘 먹고 싶었지만 매출 0원의 압박을 안고서 거하게 먹을 수 있는 배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슬펐다), 서가를 정리하고 들여올 책 목록을 입력했다. 괜히 비어있는 책방을 한 바퀴 걸어 다니고 책상 위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팔도 한 번 휘저어 보고 목도 양옆으로 당겨보기도 하고 대놓고 방귀도 뿡뿡 뀌어보기도 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누군가 불시에 들어와 내 방귀 소리에 깜짝 놀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보고도 못 본 척했던 구석의 얼룩을 닦고, 안쪽 선반에 무질서하게 올라가 있던 서류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사이에 껴 있던 "동네책방 동네 도서관" 월간지를 새삼스럽게 꺼내서 찬찬히 읽으며 여유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다른 책방들의 소식을 읽다 보니 우리 책방만 빼고 다른 모든 책방들이 다 훌륭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흑마술에 걸려버렸다.
이러다 아마 나만 망할 거야,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그동안 내가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했던 일이 생각이 나지 않으니 별생각 없이 책방을 운영해온 것 같고, 나태한 운영은 놀기 좋아하는 천성 때문이었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의 굴레에서 계속 맴돌다 보니 결국 절망이 코앞에 다가와있었다.
그렇게 낙담하고 앉아 있는데 손님 한 명이 가쁜 숨을 쉬며 들어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흑마술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면서도 사람은 참 간사해서, 매출 0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심각한 마이너스라는 생각에 다시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실제로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절망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려고 하는 끝없는 생각의 고리에서는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희망까지는 아니어도 될 대로 돼라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방지기는 이렇게 하루를 잘 버티는 것만으로도 책방을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