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며칠 동안 빗소리를 들으며 처져 있다가 파란 하늘이 보이고 나니, 한가롭게 떠있는 구름을 보면서 구름처럼 한가한 책방을 새삼스럽게 둘러보게 되었다. 둘러본 책방이 참 여유로워 보여서, 여름인데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그렇게 갑자기 생각하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들리던 어제까지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말이다. 아마도 전날까지 내리던 비에 머릿속도 어두컴컴하다가 해가 쨍하고 나니, 뇌에도 불이 탁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하는 것도 날씨 따라서 한다. 아마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살았다면 내내 맥없이 누워서 굶어 죽더라도 빗소리나 듣고 있었을 것이다.
한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책방에 별다른 행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시로 운영되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 그림책 만들기 모임을 제외하고 다른 이벤트가 없었다. 아무 이벤트도 없이 책과 커피와 초콜릿만 있는 책방이라..., 뭔가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그런데 내게는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고 야릇하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래 나는 수줍은 파티광에 이벤트 유령이었다. 파티는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열고 이벤트는 여는 족족 유령처럼 존재감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동안 토요장터며 영맥데이,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 행사며 북토크, 강연 등을 열어왔다. 불시에 번개 모임이며 파티도 심심치 않게 진행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바이러스 시대라서 행사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행사를 하게 되면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를 사용해도 내내 조마조마하다. 마음껏 행사를 하게 될 시점이 언제일까 기다리고 있지만 쉽사리 올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여유는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모두들 온라인으로 모임과 수업을 대체하고 있는 지금, 나 역시 고민하고 있기는 하지만 선뜻 시작하기는 망설여진다. 소규모로 만나더라도 얼굴을 보고 만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표정과 몸짓, 혹은 작은 습관 같은 것을 보며 만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을 텐데, 온라인으로 만나면 그런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책방에서 만나고 모이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지만, 취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어떤 관계들도 필요하다. 그런 관계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내 삶에 힘이 되어주는 것이라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서 북적이지 못해서 저 눈부신 햇살이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불이 들어온 머릿속이 다시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