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다른 업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책방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책이 생활의 필수품은 아니라서, 폭우나 폭염 혹은 혹한을 뚫고 이곳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쾌적하고 날이 좋은 날, 봄이나 가을의 그런 어느 날에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 책방은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커피나 초콜릿을 사기 위해 오기도 한다. 하지만 골목 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카페에는 단골손님이 아니면 날씨가 험한 날 일부러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출근할 때 날씨로 그날의 매출을 대충 가늠해볼 수 있다.
장마가 길어지는 요즘 같은 때, 7월 내내 비만 내린 것 같은 이런 시기에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참 한가하겠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책방으로 향한다. 한가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마음 한 켠의 불안감을 지그시 누른다. 손님이 없어도 할 일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게 참 신기한 일이다.
미뤄두었던 일을 하려고 하나씩 꺼내놓다 보면 손님 한 명이 들어온다. 커피 한 잔을 사러 온 것인데 커피만이 목적이 아니다. 앞으로 책방이 나아갈 방향성이 대해서 한참 동안 조언을 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답답한 요즘의 일상을 털어놓고는 커피를 들고 나간다. 하고 있던 일에 다시 돌아가서 조금 진행시키다 보면 또 손님 한 명이 들어온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책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내 앞에 앉는다. 앞에 앉는다는 건 최소 한 시간이라는 신호다. 손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삼십 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노트북을 힐끔거린다. 신세한탄을 하던 손님은 이제 내 걱정을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를 채울 무렵,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그제야 내 앞에 앉은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역시 바통터치를 한 것뿐이다. 그렇게 커피를 세 잔 팔고 나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에 매출 0원은 면했지만 입안은 깔깔해지고 어느 때보다 더 고단함이 느껴진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은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더 이상 손님들의 말을 들어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구석진 책방까지 찾아와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선뜻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우리는 모두 다 외롭고 각자의 힘들고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기에는 아마도 거리 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끈적끈적한 거리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차라리 혼자 담아두기를 선택한다. 그러다 넘칠 것 같으면 어딘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쏟아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알아주기를 욕망하는 동시에 제발 모르는 채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전문상담사는 아니지만, 내가 여력이 닿는 한은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내가 내어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말이다. 다만 내 시간이 매번 커피 한 잔 값이라면, 때로는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이야기를 쏟아냈으면 책 한 권이라도 사갔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책방지기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