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콜릿 책방 이야기
- 코로나 블루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깊은 무력감에 빠진 것 같다. 한 달 동안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무언가를 쓰려고 하면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런 시기에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변변치 않은 내 생각을 글로 만들어놓는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했다.


책방은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하지만, 여유롭게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있다. 자꾸만 뭔가에 떠밀리듯 해야만 할 일들을 생각하고,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지 않아서 조금씩 멍해지다가, 결국 머릿속이 엉켜버리는 바람에 초조해진다. 체념하듯 책을 손에 들면 문장이 자꾸 어딘가로 비껴가는 것 같다. 결국 한숨과 함께 나오는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간간이 오는 손님들 혹은 sns로 안부를 묻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수시로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긴 해도 기분전환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대체로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시고 나서 흥에 겨워 음악을 듣다가 춤을 추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심지어, 술도 마시기 귀찮아졌다.(한동안 많이 마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성실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는 죄악에 가까운 상태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일을 하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살아오신 우리 부모세대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우리 부모님은 늦잠 자는 것을 끔찍하게 한심한 일로 여기시며 휴가를 3일 이상 가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나는 여전히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리고 꽉 짜인 일상이 아닌 비어 있는 듯한 일상은 불편하다. 그 빈 시간을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몰라서 초조할 때도 많다. 나는 아무래도 지금 벌어지는 이 비일상의 모습과, 벌어져 있는 시간의 틈새들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 같다. 초조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블루'가 찾아온 모양이다.


무력감이 찾아오고 나니, 우리 모두 다 같이 힘들다는 말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라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해서 내 고통에 무디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잠시 힘이 될 때가 물론 있지만, 그것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이런 감정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오래 방치한다면 분명히 병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떤 기발하고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나도 활기차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침울한 이런 시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신박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전보다 더 조용하고 차분하고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일상을 그려보고 살아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제는 이전과 다른 일상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콜릿 책방 이야기 - 전문상담사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