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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대상포진!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대상포진에 걸렸다.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로 건강에 대해서 장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감기 따윈 절대 안 걸려."하고 말할 때 항상 건강에 대해서 자신하며 말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말해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와 시어머니, 남편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 그런 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했을 때도, 겉으로는 걱정하는 시늉을 하면서 속으로는 "나는 저런 병은 절대 안 걸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몸의 이상증세가 나타났을 때 대상포진이라는 건 전혀 의심해보지 않았다.


오른쪽 골반부터 시작해서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까지 이상한 통증이 시작되어서, 처음에는 갸우뚱하기만 했다. 근육통 같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는 것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통증이었다. 처음 느끼는 낯선 통증이긴 해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근육통이라고 단정 지었다. 근육통이 생길만한 운동을 딱히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요가를 하고 있으니 요가 동작 중 하나를 조금 무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주 난이도가 낮은 기초 요가 동작만 했지만 말이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통증은 조금 더 심해졌고, 골반이 조금 기우뚱해진 것 같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데 자꾸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처럼 혹은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묘한 자극이 훑고 지나갔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나니, 걸을 때 조금 절뚝거리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 젖은 몸을 닦다가 무심코 손이 간 자리에 빨간 수포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무심하게 남편에게 수포를 보여주면 말했다.

"나 이런 게 생겼다. 신기하지?"

도대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약간의 변화와 불편함이 이유 없이 찾아와서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통증은 견딜 만했다.

절뚝거리며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아무래도 대상포진인 것 같다고 하면서. 본인이 한 번 경험해봐서 수포를 보고 나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 나는 정말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고 낫는 방법을 검색해보았다. 폭풍 검색에 세밀한 검색까지 총동원해봤지만, 그런 방법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몇 시간 동안 눈이 빨개지게 보고 나서야 체념하고(병원에 가지 않으면 몇 주 동안 통증에 시달리면서 엄청나게 고생해야 한다는 정보만 가득한 것을 보고), 병원에 갔다.

오! 의학의 놀라움이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니 바로 통증이 사라졌다. 아프다가 통증이 사라지니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피로감이 몸을 무너뜨리는 것 같고 잠이 쏟아졌다. 평생 그런 피로는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의 무겁고 짙은 피로였다. 통증이 사라졌는데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처음에는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마구 저항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몸의 주장과 힘은 강했다. 그동안 홀대한 것에 대한 보복인 것일까. 하루에 잠을 8-9시간씩 꼬박꼬박 잘 수밖에 없었다.


피로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서 홍삼을 갖다 주고 전복을 사주었다. 다들 호들갑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어릴 때 앓아누우면 엄마가 나만 더 잘해주는 게 좋아서 좀 더 아프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 다시 솟아났다. 뭐야, 관심받으니까 좋잖아!(그래요, 저는 샤이한 관종입니다.)


일주일간 병원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나니 이제 병은 다 나았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는 조금 더 엄살을 부리고 싶은 어린아이가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어린아이를 건강한 어른으로 끌어올려주는 이웃들과 책방의 단골손님들, 독서모임 멤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더 크게 남았다. 조금 더 오래 책방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자양분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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