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느낌이었다. 아마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도 여전히 나에게는 낯선 세상이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큰소리치긴 했지만 막상 시작해서 형편없는 영상 한 두 개 올리고 나니 심드렁해졌다. 온라인으로 뭔가를 한다는 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카메라 울렁증도 정말 심하다. 타인의 눈을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 렌즈를 보며 말을 한다는 건 너무 미래적이며 기계적인 느낌이라서 속이 울렁거렸다. 사이보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잠시 정신을 놓아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한 기분이 들었다. 모르는 채로 살아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면한다고 세상이 다시 거꾸로 흘러갈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기술의 발전은 내 생에서도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막연하게 언젠가는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런 느낌은 마치 기회가 된다면 우주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처럼 어렴풋하고 모호한 것이었다.
책방에 오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별생각 없이 무선호출기(삐삐)를 사용했던 세대라고 하면 상대가 광막한 거리감을 느끼게 될 만큼 나이가 들어버렸는데, 돌아보면 그동안 그렇게 빠른 기술의 발전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놀라게 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선호출기가 (빛의 속도로 사라진) 시티폰으로, 시티폰에서 폴더폰으로, 폴더폰에서 터치폰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그런 변화에 현기증을 느꼈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 반갑고 놀라웠고 빨리 사용해보고 싶기도 했다.(얼리어답터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기술이 내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를 느낀 것이지, 변화하는 기술 자체에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실시간 화상 회의나 온라인 수업 같은 건 아직까지도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더욱이 내 생활과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할머니 같긴 하다. 요즘은 할머니들도 유튜브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하던데...)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줌으로 하는 수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았을 뿐이지, 내게 닥쳐올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모임이 제한되고 모든 강연이 취소되면서 그동안 해왔던 복합 문화공간으로서의 책방의 기능이 쪼그라들고 커피와 초콜릿만 바라보다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망해버릴 것 같았다.
막상 마음을 먹긴 했지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막막해졌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경험자를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아는 사람 리스트를 주욱 훑어보고 나서 헬로 인디북스 보람님께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착한 보람님은 흔쾌히 실시간 온라인 강연을 해주기로 했고, 나는 보람님만 굳게 믿고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강연 시간 전에 카메라 앞에 앉았는데, 왜 또 난 석상처럼 굳어버리는 거야, 머릿속은 하얗게 표백되어버렸고.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새로운 도전이 어렵고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에게 코로나 19 상황은 넘어야 할 허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허들이 높아지기만 하는데, 계속 넘어가다 보면 골인지점이 오기는 올까. 무슨 일이든 끝이 있으리라 막연히 믿고 가보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한 번 해보고 나니 다음은 좀 더 쉬울 것 같기는 하다. 하다 보면 꽤 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다른 허들이 등장하겠지. 인생 쉬운 게 없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평지를 달리는 것보다는 재밌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좀처럼 최면이 걸리지 않아서 아직도 말똥말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