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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책방 이야기
- 코로나 무기력증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기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해 약간의 희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무기력증에 빠져서 자신을 내팽개치지는 않는다. 최근에 읽은 브래디 미카오의 <아이들의 계급투쟁>에서 보면 밑바닥 인생을 사는 영국 하층민들의 모습에서 흔하게 읽히는 것이 무기력이다. 술과 마약, 섹스에 빠져서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서 밑바닥 삶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력이 전혀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보게 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흑인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빅 마이크(마이클)의 엄마가 마약에 중독되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이나, 주인공이 살던 지역의 친구들 모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모두들 무기력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무기력의 늪은 멀리 있지 않다. 어느 날 문득 내 옆에 다가와 있을 때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고 나서 책방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일주일을 멍하니 보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책방에 나와있으면 수많은 걱정이 한숨이 되어서 나오는데, 그동안 그렇게나 잘 떠오르던 아이디어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책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뉴스를 검색해서 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어스름한 기운이 내려오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되는대로 먹고 마시고 잠이 들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머리는 계속 아팠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귀찮기만 했다. 책방 문을 닫고 한동안 쉬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모두 그만하고 싶었다. 사실 글은 계속 쓰지 못했다. 문장을 한 줄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그런 감정이 깊어질수록 의욕은 더 떨어졌다. 주변에서 해주는 걱정 어린 조언들은 모두 비난처럼 들렸다.


그런 상태가 무기력이라는 것을 몇 편의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아주 우연히 그런 영화들을 계속 보게 되었다.) 나의 태도가 희망을 내려놓은 상태, 미래에 대한 긍정이 없는 마음으로 현재를 비관하는 상태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이 구석에 계속 몰리게 되면 툭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권투 선수가 링 위에 올랐을 때 내내 코너에 몰려서 맞기만 하면 절반 이상 게임을 포기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합에 진 선수는 마음속 깊이 절망감이 생길 것이다. 자신이 너무 한심하니까. 한동안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내던지고 방치하고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몇 주 동안 책방에 혼자 앉아있을 때 위;북(위태로운 북클럽) 멤버들이 한 명씩 들렀다 가고, 잊을 만하면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주었다. 처음에는 예의상 한두 마디 나누다가 어느새 웃고 떠들고 심각해지고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앉아있다 보면 어떤 다른 기운이 조용히 책방 안에 감도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 독서로 연결된 우리가 서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세상과 고립되어 있던 것 같던 책방이 무기력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여전히 코로나 뉴스를 보면 마음속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안부를 물어볼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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