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소설의 가장 오래된 테마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 찾기는 누구에게나 평생 주어진 과제이며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 테마는 '자기 근원 찾기'로 확장되는 경우도 많다. 자기 근원을 찾는다고 해서 저절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것 이전에 존재하던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뜬금없이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코로나로 인한 영업제한 때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자영업에 대한 영업금지 및 영업제한 발표가 났을 때 한참 동안 고민을 했다.
초콜릿 책방은 카페인가, 책방인가.
그동안 책방의 정체성에 대해서 막연히, 초콜릿과 커피를 판매하기도 하지만 책을 중심에 두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당연히 초콜릿 "책방"이라고 책방에 방점을 찍어서 말하곤 했는데, 카페에 대한 영업제한이 시작되고 나니 갑자기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와버렸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고 나니 이곳은 책방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웠던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주장해오긴 했지만, 카페로서의 공간과 책방으로서의 기능은 확실히 차이가 나긴 나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만약 책방으로서의 기능이 더 컸다면 영업제한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을 구경하고 고를 수 있었을 텐데, 손님이 뚝 떨어진 것을 보니 아무래도 카페 쪽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카페의 기능이 더 컸다면 카페로서의 경쟁력은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빈 공간을 보며 이곳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더 커져갔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더 깊은 심연을 향해서만 헤엄쳐 들어가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어 카페 이용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나니 손님들이 다시 오기 시작했다. 물밀듯이 막 몰려오지는 않았지만(이것은 언제나 꿈같은 희망),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단골손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왔다. 손님들은 커피와 초콜릿만 사는 것이 아니라, 책도 사고 책방 모임에 대해서도 물어보기도 하고 막, 막 그랬다.(표현력 부족을 용서하십시오, 흑.)
그러고 나서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심연 속에 그냥 파묻어버렸다. 파묻기 전에 잠시 스쳐간 생각은, 정체성의 핵심은 현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도 나를 구성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인식하는 모습이 나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책방은 지금 이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