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의 책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끔 혼자서 흐뭇하게 웃어주기도 한다.
책방에서 내가 앉아있는 자리 맞은편 정면에는 판매용 서가가 있다. 일을 하다가 얼굴을 들면 자연스럽게 서가로 눈길이 간다. 무심코 보아 넘길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가만히 응시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책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갸우뚱거리며 다가가 보면 책들은 내가 꽂아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며칠 뒤에 살펴보면 그사이에 조금 달라져 있다.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서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순전히 내 취향대로만 구성하던 것이 이제는 책방 이용자들과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들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지만,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추천하거나 소개해주는 책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런 책들을 그때그때 기억해놓거나 메모해두었다가 살펴보고 우리 책방과 잘 맞는 것 같으면 들여놓았다. 때로는 살짝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해도 일단 들여놓을 때도 있다. 소설 위주로 큐레이션을 하긴 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책에 대한 호기심은 많은 편이어서 되도록이면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는 쪽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그렇게 들여놓는 책들이 새롭게 생기고 기존의 책들이 팔리고 나면 책장의 책들이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미묘하지만 조금씩 키가 자라고 있는 식물들처럼 말이다. 무심코 보는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지만, 매일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들에게는 접혀있던 작은 이파리가 펴지는 게 보이고 그 발견에 기쁨의 탄성을 내뱉게 된다. 그와 비슷하게 책장의 책들을 매일같이 보면서 어느 날 문득, 변해있는 모습에 놀라서 혼자 감탄하곤 한다.
서가를 가만히 보면서 자라는 모습에 혼자 좋아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충분히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도 한다. 많은 책방에서 책을 잘 판매하기 위해서 블라인드 북도 만들고 포장도 예쁘게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고민만 할 뿐이다. 앉아서 책을 읽다가 멍하니 눈길이 닿은 곳에 책들이 있고, 그저 그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아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책방지기로서 책방에 앉아있기보다는 책 애호가로서 이곳에 앉아있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책을 많이 팔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한다.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팔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두 마음은 너무 팽팽해서 좀처럼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포장을 예쁘게 하지 못하면 리뷰라도 좀 잘 써놓으면 좋을 텐데, 책을 한 줄이라도 더 읽기에 바쁘다. 한 권을 읽고 나면 읽고 싶었던 책들이 줄지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다시 독서에 열중하게 된다. 커피 몇 번 내리고 초콜릿 좀 만드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읽고 쓰는 데만 사용하려고 하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책방 주인으로는 좀 한심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책방 주인은 아무래도 책을 많이 팔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도 잠시, 바깥에 눈이 내리고 있어서 책방에는 오늘 나 혼자다. 이 호젓한 시간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시간이다. 다른 일에 빼앗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책방을 낸 이후 단 한 번도, 책방을 낸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